[작전을 말한다]② 라덕연이 신고가 만든 비결 셋...통정매매, 다단계, 빚투

이인아 기자 2023. 5.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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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무슨... 숨어있는 저평가주에 힘을 좀 실어주자는 거지”

2009년 개봉한 영화 ‘작전’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에는 조직폭력배 출신 주가 조작 설계자가 등장한다. 그가 만든 시나리오는 이렇다. 증시에 상장된 부실한 건설회사의 주식을 미리 사들인다. 건설사가 유망한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인수한다는 소식을 시장에 퍼뜨린다. 건설사의 주가가 오르면? 그동안 사들인 물량을 되파는, 이른바 ‘개미 털기’로 한탕 먹고 나오겠다는 것이다.

영화 <작전> 스틸컷 /(주)영화사 비단길

2023년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된 투자컨설팅업체 라덕연 대표의 수법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달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주식 매매 방법은 이렇다. 시장에서 저평가됐다는 기업을 골라 2~3년에 걸쳐 여러 투자자의 계좌를 이용해 꾸준히 사들인다. 투자자들은 본인이 입금한 돈으로 본인이 주식을 샀기 때문에(비록 불법 일임을 받았지만) 주가 조작이 아니다. 기업가치 대비 가격이 싼 주식을 분할매수하고, 시장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보유한다. 흔히 말하는 주식투자의 정석이다. 그간 라 씨가 투자자들에게 ‘절대 들키지 않을 것’이라 말한 배경도 이런 이유에서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발 주가 폭락사태에 얽힌 기업들의 공통점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수가 적고, 오너일가의 승계 문제가 얽혀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무적으로 우량하고, 건실한 기업이었다. 이런 기업이 작전에 얽혔을 것이라고 누가 의심할 수 있었을까? ‘저평가주에 힘을 좀 실어주겠다’는 영화 대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문이다.

실제 영화처럼 거래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통정매매다. 라 씨는 고액 자산가를 투자자로 모집한 뒤 투자자에게서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넘겨받아 증권사 계좌를 개설했다. 라 씨는 차명 휴대폰을 이용해 고객 계좌를 직접 손쉽게 관리했다. 경찰이 압수한 휴대전화만 200여대였다. 미등록 투자컨설팅업체인 호안에는 영업팀과 매매팀이 있었고, 팀원들이 투자자 계좌를 대신 매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한 휴대폰으로 사고팔고, 다른 휴대폰으로 다시 사고파는 식으로 매매했다.

예를 들어 라 씨가 오른손에 A씨 계좌가 열린 휴대전화를 쥐고, 왼손에는 B씨 계좌가 열린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고 가정하자. A씨 계좌로 거래량이 적은 주식을 골라 100주를 사고, 더 높은 가격에 매도 주문을 낸다. B씨 계좌로 100주를 매수했다가 더 높은 가격으로 다시 매도 주문을 낸다. A씨가 산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오른손, 왼손을 거치면서 주가는 올라가 있다.

즉 과거에는 작전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현란한 매매 기술은 없었다. 현재 주가보다 비싼 가격에 대량 주문을 내거나, 때로는 시장가 주문으로 매물 폭탄을 떨구는 식의 ‘이상 주문’이 없었기에 금융당국이나 한국거래소에서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픽=손민균

라 씨 일당은 대리 투자한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고객 계좌를 들고, 전국 곳곳에서 주문을 체결했다. VIP 고객에게는 차명 휴대폰이나 주식매매 프로그램이 깔린 노트북을 퀵 서비스로 보냈다. 퀵 서비스를 이용하면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물건도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

특정 시간, 주문량, 가격 등 손발만 잘 맞으면 정상적인 거래로 보일 수 있어서다. 시세조종이 아니라 저평가 우량주를 서울, 부산 등지에서 계속 샀다고 항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속 주식을 사야하는 굴레에 빠진 이들은 ‘빚투’를 활용했다. 고액 자산가들을 끌어모으고, 이들 계좌로 신용거래, 차액결제거래(CFD) 등을 활용해 최대한 빚을 내 계속 투자하게 했다. 어마어마하게 커진 자금으로 특정 주식을 계속 사들였고, 주가가 천천히 올랐다. 전적으로 계좌를 맡기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빚을 내 투자하다가 피해자가 된 사례도 있었다.

주가조작 일당에게 CFD는 레버리지 활용처이자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CFD 계좌로 주식을 거래하면 외국인이 매매한 걸로 찍힌다. 실제 주식을 산 건 라 씨 일당이지만, 외국계 증권사가 저평가 우량주를 매집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셈이다. SG증권이 국내 증권사와 계약을 맺은 CFD 계좌 창구라는 게 알려지기 전까지 ‘SG증권이 특정 주식을 매입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꼬인 개미도 있을 것이다.

라 씨 일당은 주식거래 수익의 절반을 수수료로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금이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다시 투자하라고 제안하면서 눈덩이처럼 투자 규모를 불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주가조작으로 잘 포장된 폰지사기’라고 평가한다. 2006년 발생한 루보 사건과 비교하기도 한다. 루보 사건이란 제이유그룹이라는 다단계 회사가 투자자들을 모아 차명계좌로 부실기업인 루보 주식을 마구 사들여 주가를 40배 넘게 올린 일을 말한다. 매일 주가가 오르자 ‘무한 성장주’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는데, 통정매매로 조작된 주가인 게 드러나자 13일 연속 하한가로 떨어졌고,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

라 씨는 3년 전부터 주가조작을 기획한 것으로 추정된다. 긴 시간 계속 투자금이 늘어나자 정·재계, 문화계, 체육계 인사들이 모집책을 자처해 새로운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유명 가수 임창정, 이중명 전 아난티그룹 회장 등을 비롯해 국회의원, 프로골퍼, 의사 등 각계각층 인사가 고구마 줄기처럼 꼬이게 됐다.

주식시장의 비밀을 알아냈다며 긴 시간 성공한 투자자인 척 행세했던 라덕연 씨는 이제 경제사범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9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은 라 씨를 자본시장법위반(시세조종, 무등록 투자일임업), 범죄수익은닉법위반 등 혐의로 체포했다. 라 대표 주변 인물들도 참고인으로 차례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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