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하게 외친 탈중국에 한국경제 '탈날라'[베이징 노트]

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2023. 5. 10.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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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급변한 외교노선 '이제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
탈중국 선언뒤 대중 무역적자 눈덩이…오비이락?
대중 의존도 여전…손꼽아 기다리는 리오프닝 효과
국익따라 움직이는 반중진영서 '가치' 내세운 한국
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나란히 걷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우리 동맹 파트너들을 위한 중요한 새로운 장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진정한 리더십의 사례"

지난 7일 한국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미국 정부를 대표해 베단트 파텔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불편한 입장에 대해서는 "우리는 모든 국가에 미국과 중국, 미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해왔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중국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일 "관련 국가들이 더 이상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파벌을 형성하고 소그룹 대결을 벌이는 관행에는 출구가 없다"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즈도 같은날 보도에서 한일 관계 회복에 대해 "미국이 밀어붙인 결과",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며 비난했다.

대중국 고립전선 구축에 올인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두 나라간 관계회복이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고, 이런 미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이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주목할 점은 지난 정부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사실상 회색지대에 머물고 있던 한국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밀착하며 중국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중국의 주장처럼 압력이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주장대로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대중 무역, 수십년 흑자에서 7개월 연속 적자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지난 수십년간 보수.진보 어느 쪽이 집권하든 대중국 외교의 대전제였고 얼마전까지 그럭저럭 잘 작동돼 왔다.

중국은 2000년대까지 한국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생산기지 역할을 했고, 201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한 뒤 완제품을 만들어 전세계로 내보내는 수출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이 기간 대중 무역 성적표도 꽤 괜찮은 편이다. 지난 2001년까지만 해도 48.9억 달러에 불과했던 대중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 2016년에는 628.2억 달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후 무역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2021년까지 2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중 수교이후 30년간 지속되오던 이런 무역수지 흑자 구조가 지난해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중 무역수지 흑자폭은 12.1억 달러로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심지어 지난해 10월부터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선 뒤 무려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4월까지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101.1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특히 올해 4월의 경우 대중 무역수지 적자 규모(22.7억 달러)가 전체 교역국 대상 무역수지 적자 규모(26.2억 달러)와 비슷하다. 한마디로 다른 나라에서 번 돈을 모두 중국에 갖다바치는 구조가 된 셈이다.

'안미경중'→'안미경미' 급속 전환이 대중 적자 원인?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들어 '안미경중'에서 '안미경미'로 급격히 전환한 것이 대중 무역수지 적자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최상목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우리가 중국의 대안이 되는 시장이 필요하고 다변화가 이뤄져야하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유럽시장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윤 대통령이 중국과 대척점에 서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한 자리에서 나온 이같은 발언은 '탈중국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윤 대통령의 친구로 알려진 정재호 주중 중국대사가 지난해 8월 취임하자마자 중국에 투자한 우리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언급하며 '파티는 끝났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합뉴스


또, 지난달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가 부족해질 경우 한국 기업이 그 부족분을 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미국이 한국에 요청한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도 은근슬쩍 한국의 외교정책이 대중 적자의 원인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즈는 지난 5일 보도에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 소식을 자세히 전하며 "이러한 대중 수출 감소의 원인은 한국의 외교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1분기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폭이 무려 28.2%로 주요 23개국 가운데 가장 컸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런 주장이 마냥 허풍은 아닌듯 보인다.

다만,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여전히 한국을 대체할 공급처가 없다는 점에서 이같은 주장은 미국과 밀착하는 한국에 대한 경고, 또는 위협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에 진출한 한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이 올라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다"면서 "대중 반도체 수출 감소는 글로벌 경기 악화로 인해 재고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탈중국 외치더니…중국 리오프닝에 목맨 한국 경제

설사 윤석열 정부의 급격한 '안미경미'로의 전환이 대중국 수출 감소의 주 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과연 제대로된 준비를 거쳐 '탈중국'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다시 최상목 경제수석의 발언으로 돌아가면 당시 그는 수출선 다변화를 강조하며 반도체·철강 등 전통적 수출 주력 산업 외 새로운 주력 산업 발굴·육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원전과 방산 분야를 새로운 주력 산업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최 수석이 말한 새로운 주력산업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 정부가 목매고 있는 미국이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 제출한 체코 원자력발전사업 입찰신고서를 반려하는 등 뒤통수를 때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4개월 연속 되고 있는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탈중국을 외쳤던 현 정부의 경제관료들이 '중국 경제의 회복'을 손꼽아 기다리는 웃지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2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오크우드 프리미어 인천에서 열린 '한·중·일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사령탑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10일 뉴욕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의 제조업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우리 기업의 수출로도 결국은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라면서도 "(수출 증가) 타이밍이 빨리 오느냐, 시간을 두고 오느냐는 문제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추 부총리는 지난 1월에도 "올해 1분기에는 기저효과와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 등에 힘입어 플러스 성장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며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에 한국의 경제 성장 여부를 연결시키기도 했다.

결국 '수출시장 다변화'와 '새로운 주력산업 발굴·육성'이라는 거창한 방법론을 제시하며 자신있게 탈중국을 외쳤지만, 실상은 '중국 경제가 좋아져야 한국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인디언 기우제식 희망에 갖혀 있는 셈이다.

가치 외교?…국익따라 움직이는 반중 전선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두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가치 외교'를 내세웠다. 이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연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편에 서서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에 맞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다른 국가들도 이런 순수한 의도로 대중국 고립전선에 동참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표적으로 대만 문제만 해도 이들 국가들은 철저하게 '국익'에 입각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대만해협을 놓고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선 대만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전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에서 58%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TSMC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TSMC가 중국 손으로 넘어가면 미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 상상하기 힘든 타격을 입게된다. 오죽하면 미국 극우진영에서는 전쟁이 벌어지면 아예 TSMC 공장을 폭파시켜 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유럽은 또 어떤가? 지난달 방중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의 면전에 대고 중국의 대만 정책을 비판하며 정의의 투사 노릇을 했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3일 독일의 한 반도체 기업 공장 착공식에 참여해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현재 반도체 (생산의) 세계적 중심지는 대만과 한국이며, 언제든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지역"이라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거론한 뒤 "여기 유럽에서 매우 중요한 반도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만해협의 정세불안을 빌미로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지를 유럽으로 옮겨 오겠다는 뜻이다.

남중국해에서 대만과 오키나와 사이에 위치한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도 대만해협 분쟁에 적극 개입하며 '군사 대국화'라는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혐중 정서 기댄 성급한 탈중국, 국익은 어디에?

그런다면 한국은 왜 대만 문제에 끼어들었을까? 가치 외교, 국제사회 질서 수호, 혹은 6.25 전쟁을 겪은 나라로서의 동병상련 등의 숭고한 입장 외에 미국이나 유럽, 일본처럼 경제, 안보 측면에서 국익에 도움이 될만한 요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북핵을 등에 업고 사는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미국 주도의 대중고립 전선에 싫든 좋든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여기다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할 정도로 경제력과 군사력이 급성장했다고 해서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에게 "불에 타 죽는다"는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중국의 오만함 때문에라도 '중국 보다는 미국'이라는 국내 반중 여론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누가 등떠미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우리가 앞장서서 탈중국을 선언하고 중국과 척을 질 필요가 있을까? 백번 양보해서 설사 탈중국이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국익 관점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물밑에서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 국익은 무시한 채 혐중 정서에 기대 '좋아, 빠르게 가'라고 호기롭게 외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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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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