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이행, 환경 때문만이 아냐…기업 생존의 문제"
[편집자주]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넷제로)' 중간 목표 시점인 2030년을 앞두고 전세계 정부·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왜'에서 '어떻게'의 단계로 접어든 넷제로 추진은 에너지 전환, 산업, 수송 등의 전방위적 변화를 수반합니다. 광범위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만큼 다양한 시각과 정보가 혼재합니다. 넷제로 달성과 관련해 가장 전방에 있는 각국 기업·기관의 인물들을 만나 합리적인 달성 방법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전달하려 합니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를 만드는 게 환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이 바뀌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매우 거대한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기업이 바뀌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임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8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이 기업의 성장 기회이자 생존 문제라고 했다. 가장 처음 탄소중립(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 합이 '제로') 의제가 부상한 기저엔 기후변화 대응이란 환경적 동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기업의 탈(脫)탄소화 경쟁력 그 자체가 이슈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이는 기업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한상의의 싱크탱크 SGI가 탄소중립 연구에 주력했던 배경이다. 2020년 5월 SGI 원장에 취임해 10일 3년간의 임기를 마치는 임진 원장은 지난해 4회에 걸쳐 약 100명의 전문가들과 연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를 지휘했다. 지난 3~4일 대한상의가 '탄소중립과 에너지정책 국제세미나'를 열고 관련 정책보고서를 작성한 토대가 된 연구다.
임 원장은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을 함께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핵심"이란 말로 지금까지의 연구를 간추렸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편익이 비용을 앞선다. 문제는 비용은 현재 발생하지만 편익은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전기차나 배터리 연구개발 투자자금이 투입된 시점 보다 한참 후 수익을 창출하는 게 그 예다. 결국 편익을 내는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는 게 관건인데, 이를 위해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개개인의 행동 변화보다 기술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져 산업에서 구조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게 핵심이라는 것.
그는 이 '기술' 개발이 '시장'과 '인센티브'에 기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정부가 나설 부분과 민간이 주도해야 할 부분을 구별하고,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할 유인을 키우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항공우주처럼 국가 주도 투자가 필요한 분야가 있지만, 모든 분야를 국가가 다 끌고 가면 투입하는 돈과 노력에 비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인센티브의 경우 화석연료 기반으로 돼 있는 에너지 관련 세제를 친환경 전력 위주로 개편하거나 탄소저감 관련 기술 개발을 유도하는 세제 혜택 등이 가능한 선택지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행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는 '금융'을 꼽았다. 기업이 연구개발에 나서고 대대적인 사업 전환을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 만큼 기업이 자금조달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임 원장은 금융지원에 대해서도 '민간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탄소저감 기술 개발엔 오랜 기간 자금이 투입돼야 하고 기술이 실패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민간에만 전적으로 두면 안 된다"고 했다. 현재 미국·유럽 정부가 초기단계의 청정에너지·기술 분야의 산업 조성에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그는 1970년대식으로 정부가 독자적이고 대대적인 정책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비효율이 발생하지 않게 민간이 합류해 금융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다양한 형태의 금융기법이 있는 만큼 민간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자금공급 방식을 설계할 수 있다"고 했다. 일례로 민간이 더 많은 돈을 투자해 위험을 더 감수하는 대신 수익이 실현됐을 때 이를 더 많이 가져가는 등의 민관 합작 펀드 등이 가능하다.
임 원장은 "실제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매일의 업무가 바빠 탄소중립 같은 이슈에 대해 장기 전략을 짜는 게 쉽지 않다"며 "탄소중립 이슈를 아직 피상적으로 환경보호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했다. 자체 연구소를 보유한 가장 큰 규모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기업 차원에서 대비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란 설명이다. 그럼에도 임 원장은 "저탄소 이행에 대비하지 않았을 때 기업들이 직면하게 될 결정적 순간이 올 수 있다"며 정부의 지원과 함께 기업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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