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이오아누 "나는 무대 위 화가…신작 '잉크'는 발명품"[문화人터뷰]

강진아 기자 2023. 5.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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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그리스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 (사진=Julian Mommert 제공) 2023.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화가의 눈으로 무대 예술을 실험하고 있어요. 캔버스와 종이 위에 펼쳤을 때보다 무대 위에서 더 좋은 화가라고 생각하죠."

그리스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가 신작 '잉크'로 6년 만에 내한했다. 국립극장 해외초청작으로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연출가부터 안무가, 디자이너, 배우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막식도 그의 솜씨였다. 순수 미술을 전공했고 화가이자 만화가로 일찍이 두각을 드러낸 그는 현대 공연예술 거장인 연출가 로버트 윌슨과 독일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만나며 창작 영역을 회화에서 공연으로 옮겨왔다. 1986년 에다포스 댄스시어터를 창설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지난 9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연예술은 시각예술에 밀착해있던 나를 꺼내준 장르"라며 "동시대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물론 관객들과 직접 접촉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무대 위의 시인'으로 불리는 파파이오아누의 무대는 하나의 장르로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한 편의 시나 추상화와 같은 미학을 추구한다.

[서울=뉴시스]그리스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신작 '잉크' 공연 사진. (사진=Julian Mommert 제공) 2023.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이번 신작에 대해 "장르를 규정하긴 힘들다. 대사가 없어서 연극이라고 하기 어렵고, 동작을 안무로 짠 것도 아니어서 무용이라고 하기도 어렵다"며 "제가 발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연극 연출가와 안무가의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아서 그 사이 어딘가 길을 찾아서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무대 위의 시인'은 저를 부르는 별칭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제 의도를 정의하는 말 같아요. 시인의 어원은 '하다' 단어에서 파생돼 '하는 사람' 또는 '만드는 사람(창조자)'이라는 뜻이 있어요. 무언가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죠."

아시아 초연인 '잉크'는 태곳적 요소이자 우주의 기원인 물을 주 소재로 한다. 물줄기가 보슬비처럼 무대 전체에 흩뿌려지고, 두 남자가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며 공연이 시작된다.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인물과 벌거벗은 채 갓 태어난 듯 에너지 넘치는 인물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이들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또는 어두운 내면과 사투하는 스스로 모습처럼, 서로를 끌어당기면서도 밀어내는 듯한 움직임을 펼쳐낸다. 2인극으로 파파이오아누가 배우로 무대에 직접 오르기도 한다.

[서울=뉴시스]그리스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신작 '잉크' 공연 사진. (사진=Julian Mommert 제공) 2023.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물을 선택한 이유보다는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다"며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거나 용해한다.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특징도 좋아하고 은유적인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2017년 첫 내한 당시 선보인 '위대한 조련사'와 그의 대표작 '메데아' 등에서 시도했던 물의 요소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미리 정한 서사나 목표는 없었다.

그는 "물을 뿌리는 데 큰 매력을 느껴서 다시 활용해보고 싶었다. 연습 과정에서 자유롭게 실험하며 무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명료하게 만들어가면서 제가 원하는 걸 찾아나갔다"고 했다.

"사냥꾼이나 아버지 이야기, 인간 욕망에 관한 서사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옷감이 물에 젖었을 때 빛을 반사하고, 비닐이 움직일 때 물과 같다는 걸 작업 과정에서 발견했죠. 비닐에 고여있는 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은 은하계 모습과 같았죠. 하나하나 그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서울=뉴시스]그리스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신작 '잉크' 공연 사진. (사진=Julian Mommert 제공) 2023.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목은 작품이 만들어진 후 결정됐다. 늘 그의 작품 제목을 도맡아 짓는 이가 있다. "잉크는 문어가 먹물을 내뿜는 본능적인 요소는 물론 인간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연결된다"며 "신체적인 면이 정신적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 제 작품과 어울렸다. 제목이 거꾸로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무대 위 두 사람의 관계는 상징적인 장면들로 그려진다. 그리스 신화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를 그린 명화, SF영화 '에이리언'의 공상적 장면,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춘화 속 문어 형상 등 신화와 영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 출신인 만큼 작업하며 그 원형을 파고들 때 그리스 신화나 문학을 마주하게 되는 건 필연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잉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공연 마지막날엔 말할 수 있을 거라며 말을 아꼈다. 관객들이 있는 그대로 느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품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건 제 몫이 아니에요. 저는 규정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실행할 뿐이죠. 관객들은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 작품은 심리적이고, 다시 말하면 정신분석학적이죠. 하지만 공연을 본 이들이 또다른 단어을 말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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