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아픔 새겨진 고갯길… 녹음 시린 명품 숲길 됐다 [자박자박 소읍탐방]
새 길이 뚫리면 옛길은 잊히기 마련이다. 뚜렷했던 발자국은 희미해지고 그 길에 남겨진 무수한 사연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모두 그런 건 아니다. 문경새재처럼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길도 있고, 지리산 둘레길처럼 희미한 흔적을 다시 이어 걷기 여행지로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남 화순군을 잇는 너릿재 옛길도 바로 아래로 터널이 뚫리며 도로의 기능을 잃었지만, 울창한 수목이 그늘을 드리운 명품 숲길로 되살아났다.
동학농민운동, 한국전쟁 그리고 5월 광주 비극 서린 길
너릿재는 화순의 진산인 만연산과 안양산이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위치한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갯길이지만 1971년 바로 아래로 터널이 뚫리면서 더 이상 차가 다니지 않는다.
너릿재라는 명칭은 1757년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편찬한 ‘여지도서’에 ‘판치(板峙)’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널빤지처럼 판판한 고갯마루라는 의미이니 우리말로 옮기면 곧 너릿재다. 고종 1년(1864) 김정호가 편찬한 전국 지리지 ‘대동지지’에도 ‘판치는 (화순) 북쪽 10리에 있으며 광주와 경계다’라고 수록돼 있다. 못해도 3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다. 옛날 이 깊고 험한 고개를 넘던 중 산적이나 도둑을 만나 죽음을 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널에 실려 느릿느릿 내려온다 해서 너릿재라 불렀다는 설이다. 아무래도 이름이 먼저고 억지 해석이 덧붙여진 듯하다.
너릿재 옛길은 전체 4km 정도로 걷기에 적당한 길이이다. 차가 다니던 도로가 산책로가 됐으니 굴곡이 심하고 경사가 있다 해도 걷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 쉬엄쉬엄 여유를 부려도 1시간 30분이면 너끈하다.
광주에서 너릿재터널을 지나면 바로 오른편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입구 도로변에 수레바퀴 모양의 원형 조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라남도 5·18사적지 화순 2호’ 조형물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화순군민들이 계엄군의 학살과 폭압에 항거하고자 광주로 향하다 저지당한 곳이다. 사적비에는 ‘5월 22일 너릿재 봉쇄 이후 이곳에서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고 간략히 적혀 있다. 광주역사문화자원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공수부대가 화순으로 넘어가는 차량에 기관총과 M16으로 총격을 가해 3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차에 탄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여고생 홍금숙만이 생존했다’고 기록돼 있다.
화순에는 이곳 외에 화순군청 앞 일대와 화순광업소가 5·18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화순군민들은 1980년 5월 21일 군청 앞에서 광주에서 온 시민군을 환호와 박수로 맞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신군부와 시민들에게 발포한 계엄군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성전 등 청년 13명은 이날 밤 화순광업소에서 화약과 뇌관 등을 확보해 트럭 7대에 싣고 다음 날 오전 광주 시민군에 넘겼다. 5월 22일부터 광주를 장악한 시민군과 시민단체는 5일간 민주주의공동체를 꾸리고 집회를 이어갔지만, 27일 새벽 외곽도로를 봉쇄하고 탱크 등으로 무장한 2만5,000여 계엄군에 결국 무력으로 진압당하고 말았다.
다시 5월, 그날의 비극이 서린 너릿재 옛길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초입부터 벚나무 단풍나무 편백나무 등이 터널을 이루며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비라도 내리면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길은 대체로 넓고 순탄해 운동 삼아 가볍게 산책 나온 시민들이 꽤 많은 편이다. 약 2km를 걸어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 사이에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터널을 나와 화순으로 내닫는 도로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이고 양편 산자락에 5월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고갯마루에 세워진 너릿재 유래비에는 원지실골, 원골 등의 지명으로 보아 원(院)과 주막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이 고갯길에서 빚어진 또 다른 비극이 새겨져 있다. 1894년과 1895년 사이 겨울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이곳에서 일본군에 처형당했다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 동학농민운동 증언록에는 너릿재에서 체포됐다 기지를 발휘해 탈출한 박학준이라는 인물의 일화가 손자의 증언으로 수록돼 있다.
“우금치에서 동학군이 깨지고 화순으로 피신할 때 너릿재를 넘어가다가 잡히셨는데, 박정승 이름 팔고서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박정승은 당시 정승을 사칭하던 화순의 유명한 사기꾼으로, 임금에게까지 잡혀갔는데 고종이 인물을 보더니 정승을 해먹고 살 만하다고 해서 봐줬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박학준은 자신이 박정승의 조카라고 속여 풀려났고 화순을 거쳐 무사히 장흥까지 갈 수 있었다. 그의 아들이 조선대학교 설립자 박철웅이다. 독립운동가에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 학교를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총장직을 사퇴한 인물이다.
1946년에는 이곳에서 미군정에 의해 유혈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광주에서 열리는 광복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8월 15일 오전 3시 2,600여 명의 화순탄광 노동자와 주민이 '완전 독립을 보장하라' '쌀 배급을 늘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다 미군정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경찰이 장갑차로 행렬을 막고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한다.
너릿재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에 의해 경찰과 청년 다수가 희생되는 일도 있었다. 역사의 고비마다 아픔이 서린 길이라 터널을 이룬 찬란한 초록이 조금은 처연하게 보인다.
길은 고갯마루부터 광주 동구로 접어든다. 화순 구간은 비포장 흙길인데 광주 구간은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걷기에 더 편안하지만 길의 정취나 숲의 운치는 비포장 도로만 못하다. 자전거도로를 겸하고 있어 안전에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옛길은 선교지구 아파트 단지에서 끝난다. 화순 쪽에 주차해 놓았다면 아파트 단지에서 약 500m 떨어진 화순 방향 선교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 단 한 정거장, 너릿재터널을 지나 하차하면 다시 주차장 입구다. 주차장 바로 위에 소아르갤러리가 있다. 아담한 정원이 예쁘고 카페를 겸하고 있어 너릿재 산책 후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무등산 줄기 따라 이어지는 녹색 쉼터
너릿재에서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마다 신록이 짙어간다. 너릿재 서편 산자락 너머에 화순의 사진 여행지 세량지가 있다.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69년에 준공한 자그마한 저수지다. 어느 지역에나 흔한 이 저수지가 유명해진 건 산벚나무꽃이 흐드러진 봄날 아침에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부터다. 연분홍 꽃가지와 짙푸른 삼나무, 연둣빛 산자락이 물안개 피어오르는 잔잔한 수면에 비친 모습이 동화 같은 사진이다.
시기상 봄날의 서정을 느끼기엔 늦었지만, 문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 같은 자연 풍광은 여전하다. 방문객이 늘면서 한적한 산골이 깔끔하게 단장됐다. 입구에 주차장과 습지정원이 조성됐고,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로와 산자락을 따라가는 등산로도 정비해 놓았다.
화순 읍내에서 북쪽 수만리로 넘어가는 큰재 고갯마루에는 수만리생태숲공원이 있다. 무등산과 어우러진 풍광이 수려해 호남의 알프스에 비유되는 곳이다. 대규모로 단풍나무와 철쭉을 심고 그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특히 잎이 날 때부터 붉은 빛깔을 띠는 홍단풍과 공작단풍 숲길이 인상적이다. 단풍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는 산책로를 걸으면 계절을 건너뛴 듯 가을의 청량함이 느껴진다.
공원 건너편으로는 물촌, 새터, 만수, 중지 등 수만리 자연부락이 무등산 자락에 그림처럼 안겨 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는 무등산양떼목장이 있다. 1974년부터 운영해 온 호남 최대 규모 양떼목장인데 2016년 관광목장으로 전환했다. 경사진 초지에서 풀을 뜯는 양과 어우러진 풍광이 이국적이다. 주말에는 약 150마리의 양을 풀어놓는다. 입장료는 7,000원.
목장 인근의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도 빠지지 않는 녹색 쉼터다. 수령 40년 가까운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초입의 무장애 덱 구간을 포함해 산자락을 따라 지그재그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한나절 휴식처로 손색없는 곳이다. 주차료와 입장료 각각 2,000원이다.
화순=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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