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만들 때 발생하는 찌꺼기...단백질 풍부한 에너지바로 변신 [우리가 몰랐던 쓰레記]
기후변화 악화되면 맥주 마시기 어려워져
지속가능 맥주 위해 맥주박 업사이클링 활발
와인 찌꺼기 재활용도... 화장품·식품 등 무궁무진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에 약 1㎏에 달하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분리배출을 잘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쓰레기가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버리는 폐기물은 어떤 경로로 처리되고, 또 어떻게 재활용될까요. 쓰레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치익, 탁.'
야근으로 마무리한 금요일 퇴근길, 주말을 자축하는 마음으로 편의점 냉장고 속 시원한 맥주를 4캔 사 왔습니다.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한 모금 꿀꺽 들이키니 일주일간의 스트레스가 쑥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특유의 청량감이 매력적인 맥주는 우리나라 주류 소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수요만큼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맥주 찌꺼기가 얼마나 발생하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억' 소리 나는 맥주 찌꺼기
9일 국세청 등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맥주 출고량은 153만8,968㎘로 집계됐습니다. 성인 인구가 약 4,400만 명이니, 성인 1명이 500㎖ 맥주를 1년간 70잔 정도 들이켠 것이죠. 최근 들어 수요가 줄어드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소비량은 어마어마합니다.
소비량만큼이나 맥주를 만들 때 나오는 찌꺼기의 양도 상당합니다. 보통 맥주는 맥아(보리나 밀을 발아시킨 뒤 말린 것)를 뜨거운 물에 담근 뒤 짜내 맥즙을 만들고, 맥즙에 효모를 첨가해 발효시켜 만듭니다. 이때 맥즙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가 바로 '맥주박(brewer's spent grain, BSG)'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에서 발생한 맥주박은 약 42만 톤에 달하는데, 처리를 위해 들어가는 환경부담금만 280억 원 정도로 추산됩니다. 말 그대로 '억' 소리 날 정도로 많은 양의 찌꺼기가 나오는 겁니다.
맥주박이 그대로 버려질 경우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큽니다. 매립하면 110만 톤가량의 탄소가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승용차 24만 대가 1년에 내뿜는 탄소 양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또 폐수가 흘러들 경우 대지가 오염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맥주박 폐기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습니다. 식물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플랜트'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와 가뭄 등으로 인해 앞으로 보리 생산지가 3~17%가량 사라질 수 있는데, 이로 인해 맥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의 경우 맥줏값이 지금보다 2배가량 뛸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늘 마신 맥주가 내일 먹을 에너지바가 된다
기업들도 제각기 지속가능한 맥주 생산을 위해 다양한 맥주박 업사이클링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많은 맥주회사들은 보통 맥주박을 사료나 퇴비로 사용해 왔습니다. 곡식 껍질인 맥주박의 특성상 식이섬유와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축축해 오래 보관하기 어렵고 식품으로 활용하기에는 규제의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0년 7월, 정부가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맥주박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오비맥주는 푸드 리사이클링 스타트업 '리하베스트'와 손잡고 맥주박을 밀가루 대체 원료인 '리너지가루'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 가루는 맥주박을 세척해 말린 뒤 분쇄해 만드는데, 맥주박이 발효 전 단계에 발생하는 찌꺼기라 가루에는 알코올 성분이 없다고 합니다. 민영준 리하베스트 대표이사는 "리너지가루는 일반 밀가루와 비교했을 때 단백질이 2.4배, 식이섬유는 약 20배 정도 많고, 칼로리는 30% 정도 적다"면서 "가루를 이용해 에너지바, 그래놀라, 프로틴볼과 같은 간편 건강식을 출시해 판매하고, 가루 자체를 베이커리 등에 납품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남은 빵, 과일 등을 원료로 사용해 맥주를 만드는 곳도 있습니다. 맥즙을 짜내고 남은 맥주박을 업사이클링하는 대신, 남은 음식을 업사이클링해 맥즙을 짜내는 거죠. 영국 맥주회사 '토스트 에일'은 최근까지 보리에 303만9,204장의 식빵을 섞어 맥주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61톤의 탄소 절감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의 크러스트그룹도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서 나온 남은 음식물로 맥주를 만드는데, 저품질이거나 버려진 과일로 스파클링 과일 음료도 만들고 있습니다.
와인 짜고 남은 포도도 재활용... 찌꺼기의 변신은 무죄
주류업계의 푸드 업사이클링은 와인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와인은 포도를 으깬 뒤 1차 발효를 하고 껍질이나 씨 같은 이물질을 한 차례 걸러내는데, 이때 나오는 이물질을 '와인 퍼미스(wine pomace)'라고 합니다. 보통 포도 1㎏에서 와인이 700㎖, 퍼미스가 300g 정도 나오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한 해 동안 발생하는 와인 퍼미스 양은 1,000만 톤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이 역시 폐기될 때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요. 특히 와인 퍼미스는 산성이 강해 매립 시 땅을 산성화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인 '디캔트'는 이런 와인 퍼미스의 업사이클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퍼미스에 와인보다 훨씬 많은 항산화물질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습니다. 김상욱 디캔트 대표는 "퍼미스를 말린 뒤 균주를 넣어 재차 발효시키면 와인보다 40배 많은 항산화물질을 얻을 수 있다"면서 "이를 이용해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을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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