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간호법 ‘13대1’ 다툼… 간호사 업무 명확해져야 해결 첫단추 끼운다
간호사 영역 ‘지역사회’로 확대… 단독 개원 가능성 둘러싸고 논란
간호조무사 “고졸 제한은 차별”… 의료법과 같은 조항… 대졸도 가능
응급구조사 등 “업무 침범 우려”, 불명확한 업무 범위가 불안 불러
4일 정부로 이송된 간호법 제정안은 16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법안의 공포 혹은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 시한은 19일이다. 그때까지 극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환자들이 의사나 간호사 둘 중 하나를 못 볼 가능성이 높다.》
● 의사 vs 간호사
간호법은 31개 조문의 미니 법률이다. 이 중 새로운 조문은 7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의료법,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등에 있던 조항을 옮겨왔다. 논란이 됐던 내용은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거의 빠지거나 기존 의료법 문구로 대체됐다. 또 간호사 처우 개선도 원론 수준에 그쳤다.
그럼에도 논란이 심한 것은 제1조에 있는 ‘지역사회’란 단어 때문이다. 의료기관에 한정됐던 간호사의 영역을 지역사회까지 넓힌 것이다. 고령화 추세에 따라 노인과 만성질환자가 느는데, 간호사가 환자 집에 방문하거나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특히 의사와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방의 경우 방문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간협이 ‘간호법=부모돌봄법’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의사들은 ‘지역사회’라는 문구를 바탕으로 간호사가 단독 개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며 반대한다. 의사의 진단이나 처방 없이 치료가 이뤄지면 의료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 간호법에는 없지만 시행령을 통하거나 차후 법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의사의 진료 보조를 하는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하는 것은 의료법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론 어렵다. 하지만 치료 위주로 활동해온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돌봄 분야에선 더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그 가능성의 싹을 자르려 하는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결국 의사와 간호사의 다툼은 고령화에 따른 돌봄 시장의 확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도권 확보전이라는 시각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65세 이상 환자의 진료비는 41조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43%에 달한다. 207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되면 돌봄 시장은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의사가 중심인 의료법에서 간호사가 나가면 다른 직역들의 탈출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의사, 치과의사도 예전부터 별도의 법을 갖고 싶어 했다. 물리치료사의 경우 현재는 의료기관 내에서만 치료할 수 있는데 별도의 물리치료센터를 허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물리치료 처방만 의사가 하고 물리치료는 센터에 가서 받는다. 의사-약사와 같은 관계가 되는 셈이다.
● 간호사 vs 간호조무사
간호법을 둘러싼 의사-간호사의 대립 구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다. 이들은 간호법을 반대하며 의사와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이유는 다르다. 간무협의 요구는 간호법에서 고졸로 제한하고 있는 간무사 시험 응시 자격을 전문대졸 이상으로 확장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간무사는 전국 59곳의 특성화고 졸업자나 고졸 학력이 인정되는 자가 600여 간호학원에서 1년 과정을 이수하면 응시할 수 있다. 간호법의 간무사 응시자격은 의료법 80조의 조항을 그대로 옮긴 것. 간호법으로 옮긴 뒤에야 문제를 제기한 것은 간호사와 간무사 간의 위계 차이와 차별을 학력에서는 극복해 보자는 취지다. 보건복지부와 여당은 중재안에 전문대의 간호조무학과 설치를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자 특성화고와 간호학원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고교 직업 교육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간무사를 대학에서 배출하면 특성화고가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이다. 전국직업계고 간호교육교장협의회 정연 회장은 “간무사는 고졸 학력이면 충분한 보조 인력으로 대학에서 가르친다면 교육비 증가와 학력 인플레만 유발한다”며 “대졸자도 학원 등에서 소정의 과정만 밟으면 응시할 수 있어 학력 제한이 있다는 것도 잘못 됐다”고 주장했다. 대졸을 허용해 고졸 간무사에게 새로운 차별의 굴레를 씌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간호법에서 간호사의 보조 역할로 규정된 간무사들의 업무도 논란거리다. 그동안 지역사회 시설인 장기요양기관 등에서 간호사 없이도 촉탁의사의 지도 아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간무협은 간호법이 시행되면 이들 시설에 간호사가 없을 경우 간무사의 업무가 불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설들이 간호사를 채용하게 되는데 간무협은 1만5000여 명의 간무사가 실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동환 간무협 기획실장은 ‘지역사회’ 문구를 빼든가 “‘간호사 보조 업무’라는 규정을 ‘의사·치과의사·한의사 또는 간호사 지도하의 업무’로 변경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간협은 간호법의 간무사 업무 조항은 의료법을 사실상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현재와 바뀌는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 방문 간호 등이 확대되면 간무사 일자리도 같이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간호사 vs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등
간호법에 반대하는 건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등도 마찬가지다. 간호법에 이들과 관련된 규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간호사가 독립된 간호법을 통해 업무영역을 넓히면 자신들의 영역까지 침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응급구조사의 경우 간호법의 시행령 등으로 응급간호사 같은 것이 허용되면 응급구조사의 업무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요양보호사 등의 우려도 비슷하다. 임상병리사와 방사선사는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검체 채취와 검사, X선 촬영 등의 업무를 잠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병원에선 비용 부담과 인원 부족을 이유로 간호사나 간무사들이 의사 지시에 따라 임상병리사 등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간협은 “직역을 침범하는 조항도 없고, 그럴 일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 와중에 응급구조사와 임상병리사 사이에서도 직역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에서도 채혈과 심전도 검사 등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려고 하자 임상병리사들은 자신들의 영역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 ‘코로나 원팀’ 상호 의구심 해소의 길
현 상황은 의료법의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간호사를 의사와 다른 보건의료인들이 막아서는 형국이다. 간호법 반대 논리들은 당장 현실화된 위협이나 불이익이 있다기보다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의구심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간호법에서 간호사들의 업무 영역이 명확해지지 않으면 다른 직역들의 불안감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료법상 의사의 업무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는 한 문장에 불과하다. 1960년대 의료법 체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한계다.
의료 현장에선 의사와 간호사 간의 업무 범위가 불명확한 부분도 있다. 간호사가 환자진료보조(PA) 명목으로 의사를 대신해 처치나 처방을 하는 경우다. PA간호사는 공식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대형병원 등에서 1만 명 정도가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서울병원이 공개적으로 PA간호사를 모집했다가 병원장이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미국 등은 PA간호사 면허를 도입해 공식 인정하고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별도의 규정이 없어 편법으로 운용하고 있다. 의사 정원은 17년째 동결인 상황에서 PA간호사를 인정할 것인지, 인정한다면 어떤 의료 업무를 맡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답보 상태다. 간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서로 다른 시각에서 간호사가 의사 업무 일부를 관행적으로 대신한 것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간호법으로 인한 의료 직역 간의 갈등을 줄이려면 각 직역 간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문가와 국민이 참여하는 위원회 형식이 논란이 가장 적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코로나 당시 원팀으로 일했던 의사와 간호사 및 보건의료인들이 환자를 도외시한 채 의료계 내부 갈등을 휴진과 파업으로 이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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