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강동완 동아대 교수 2023. 5.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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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 동아대 교수

저는 지난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정리되면서 국가마다 막혔던 빗장을 열기 시작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때문에 한국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항공편은 여전히 막혀있습니다. 김해공항에서 2시간30분이면 갈 수 있었던 ‘가장 가까운 유럽’을 지금은 한참이나 돌아가야 하는 형편이지요. 31시간이나 걸리지만 그나마 강원도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뱃길이 유일하게 열려 있어 다행입니다. 2021년 9월 이곳을 다녀왔으니 거의 2년 만의 방문이었습니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에게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실태는 중요한 연구과제입니다. 2016년부터 이곳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의 실태를 꾸준히 추적 조사해 왔지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원래 해외 파견 북한노동자는 2021년 12월 22일까지 모두 북한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 2017년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통해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어서 안보리 결의 2397호를 통해 해외에 있는 북한 노동자를 2019년 12월 22일까지 북한으로 송환하도록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후에도 북한 노동자들은 취업비자가 아닌 관광, 유학비자를 취득해 머무르며 불법 외화벌이를 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2020년 1월 북-러 국경을 봉쇄하면서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던 항공과 철도는 전면 중단됐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지요.

이번 출장길에 가장 큰 성과라면 불법체류자 신분인 그들이 여전히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그들의 고된 건설 노동은 밤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습니다. 공개적으로 야간작업을 할 수 없기에 작업모에 장착한 희미한 랜턴 불빛에 의지해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고층건물에서 제대로 된 안전장비 하나 없이 위태롭게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공사 현장 바로 옆 컨테이너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하루 16시간 이상 작업을 했습니다. 충성의 외화벌이라 불리는 그들은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깡그리 바쳐야 했지요.

마침 현지 재래시장에서 북한 노동자 한 명과 마주했지요. 한눈에 봐도 저는 그를 ‘북한’ 사람으로, 그는 저를 ‘남조선’ 사람으로 알아봤지요. 황급히 버스에 오르는 그를 좇아 바로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 두 마디 건네어 보았습니다. 그는 조국(북한)에 돌아가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길이 막혀서 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괜스레 남조선 사람을 만났다는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어디인지, 어떤 식당을 가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등에 관해 물었습니다. 낯선 외국땅에서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가 조선사람이 조선말을 쓰지 그럼 무슨 말을 쓰느냐는 기분 좋은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경계가 조금 풀어져 ‘이곳에 와서 돈은 많이 벌었는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립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비행기길이 열리면 ‘인차’(금방) 돌아갈 거라는 그의 말이 왠지 조금은 슬퍼 보였습니다. 남조선 사람과의 대화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먼저 내린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더군요. 그러면서 그가 건넨 말은 “안전히 여행하시고, 다음에 또 봅시다”였습니다. 분명 “다음에 또 봅시다”고 말을 했습니다. 헤어질 때 당연히 나누는 인사였지만 그 말이 그토록 아프게 다가오는 건 왜였을까요? 그의 말처럼 과연 우리가 또 볼 수 있을까요?


북조선 사람과 남한 사람 사이에 건넨 일상적인 인사도 비수처럼 꽂혀 분단을 실감케 합니다. 그는 평양으로, 저는 부산으로 돌아가면 만날 수도 없는, 만나서도 아니 될 신분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분단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아픔의 시대를 살고 있지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 간 비행기 운항이 재개돼 그가 북한으로 돌아가더라도 제발 건강히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통일되면 또 만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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