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선생님에 관한 세 가지 단상

정희경 시조시인 2023. 5. 10. 03: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선생님, 조지훈의 승무에 나오는 '나빌레라'가 무슨 뜻이에요?" 3학년 진학실로 걸려 온 K의 목소리다.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고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 바뀔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의 모습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고, 선생님은 사랑으로 소신 있게 교단을 지킨다면 우리의 5월은 더욱 푸르리라.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희경 시조시인

“선생님, 조지훈의 승무에 나오는 ‘나빌레라’가 무슨 뜻이에요?” 3학년 진학실로 걸려 온 K의 목소리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5월이면 더욱 생생하다.

나는 의욕이 넘치는 2년 차 새내기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 그해 5월, 3학년 전체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의 일탈로 일어난 사건이 결국 경찰서에까지 가게 되었고 급기야는 학생선도위원회가 열렸다. 다른 반의 몇몇 아이들은 정학을 받았고 가장 중심인물이었던 K는 자퇴 처리되었다. K가 많은 아이를 자기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60여 명의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K에게 엄격했고 담임으로서 나는 K의 자퇴를 막을 힘도, 명분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K의 빈자리는 교사로서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꼭 1년 후 K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참고서에 다 나와 있는 ‘나빌레라’의 뜻을 묻는 것은 핑계였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참고서와 모의고사 기출 문제집 등을 구해 보내주었다. K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이후로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으나 어엿한 사회인으로 또 좋은 부모로 잘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나는 K의 인생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한다. 그것은 초등학교 3학년 P 선생님이 내게 준 영향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못한다. 아니 부르지 않는다. P 선생님께 들은 말이 어린 가슴에 비수가 되었다. “너는 공부는 잘하는데 노래는 왜 이리 못하니? 음정이 불안하잖아.”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한 나는 그 이후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아이였다. 물론 P 선생님은 그 말씀이 내 인생을 좌우했다는 것을 모르신다. ‘노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 되었다. ‘노래’ 때문에 많은 값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자리는 피하기 일쑤고 음치 클리닉도 다녔지만 소용이 없다.

P 선생님 덕분에 나는 훌륭한 스승은 못 되더라도 좋은 선생은 되어야 한다고 결심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나 때문에 K의 인생이 더 힘들어졌을까? 내가 끝까지 K의 자퇴를 막을 순 없었을까? 내가 대구에서 10여 년의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오는 것을 결정한 데는 K에 대한 미안함도 한몫했다.

그동안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참 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10여 년 전 J 시인의 교장 퇴임식에서 만난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 강당에서 전교생을 모아 놓고 형식적으로 하는 여느 퇴임식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마치고 도서관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다과회가 있겠거니 하고 도서관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100여 명의 학생들이 줄을 지어 합창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을 보내는 아쉬운 마음들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모으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도, 교과 선생님도 아닌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이 이렇게 교감을 하다니….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라 했다.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고 존경하는 교장 선생님이라고 했다. 학생들과 일일이 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한평생 교단을 지켜온 훌륭한 스승을 보았다.

“선생님 줄인 말로 아이들은 샘이란다/남도 억양으로 쌤이라고도 하는데/버릇은 없어 보여도 샘이란 말 참 좋다//그렇지 선생님은 샘이라야 마땅하지/깊디깊은 산골짝에 샘물로 퐁퐁 솟아/어둠을 길닦이하며 흘러가는 푸른 노래//눈 비비고 찾아온 어린 짐승 목축이고/메마른 봄 들판을 푸릇푸릇 적시는/샘 같은 선생이라야 아이들 가슴 살아나지.”(손증호의 시조 ‘샘’)


요즘은 학교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학부모들도 주장이 강해졌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 바뀔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의 모습이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고, 선생님은 사랑으로 소신 있게 교단을 지킨다면 우리의 5월은 더욱 푸르리라.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