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없이 몸짓으로 말하는 광대… “어릴 적 추억으로 안내합니다”
‘스노우쇼’로 8년 만에 한국서 공연
“대부분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세상은 기쁨이 넘치고 걱정도 없는 곳이었어요. 태양은 더 밝게 빛났고 나무는 우거져 있었으며, 발걸음마다 기적과 모험이 가득 찬 그런 세상. 이 공연은 그런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과 같습니다.”
노란색 포대자루 같은 옷을 입고 빨갛고 둥근 코를 가진 광대가 무대에 오르면, 비눗방울과 눈가루가 흩날리는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10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스노우쇼’의 창조자는 러시아의 마임(무언극) 배우이자 광대 슬라바 폴루닌(72). 1993년 초연 뒤 30년, 스노우쇼가 세계 100여 도시에서 100만 명 넘는 관객과 만나는 동안, 그는 자신이 무대 위에 만들어낸 세계 안에서 울고 웃으며 공연과 함께 나이 들었다. 이 공연이 가진 흡입력과 생명력의 비결을 이메일로 물었을 때, 그는 “아마도 누구나 자신만의 근사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관객의 무대 위 광대들의 연기와 이미지들을 질문처럼 받아들이며 그 답을 찾듯 스스로 행복을 발견합니다. 저를 포함한 광대들은 그 안내자죠.”
폴루닌은 영국 태생의 찰리 채플린(1889~1977)과 프랑스의 마르셀 마르소(1923~2007)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다. 해외에서 그의 공연은 ‘슬라바의 스노우쇼(Slava’s Snowshow)’로 불린다. ‘슬라바’는 러시아어로 ‘영광’ 혹은 ‘명성’이라는 뜻. 그는 “본명 ‘바체슬라프’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라면서도 “러시아엔 ‘배를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 배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 대로 된 거 같다”고 했다.
열일곱 살에 마임에 매료돼 광대극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979년 극단 ‘리치데이’를 창단하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광대가 됐고, 영국 런던과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거쳐 ‘스노우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영국 올리비에상, 미국 드라마데스크상 등 공연계 가장 권위 있는 상들도 받았다. “팬터마임은 처음 만나는 순간 단숨에 저를 사로잡았죠. 그 안에는 신비로움과 모호함이 숨 쉽니다. 우아하면서도 세련되고, 간결하면서도 사려 깊으며 동시에 무모하죠.” 폴루닌은 “20세기 극장의 모든 역사는 말과 침묵의 투쟁이었고, 내게는 결국 침묵이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마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광대다.
‘스노우쇼’는 광대 8명이 대사 없는 마임으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짧은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공연. 가장 유명한 부분은 막바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지우는 눈보라 장면이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광대의 눈물이 편지 위에 떨어지면 편지가 눈송이로 변하고, 어느새 눈보라가 돼 객석으로도 흩날린다. 폴루닌은 “내가 어릴 적 자란 마을엔 한 해 눈이 5m씩 내리기도 했다. 어릴 땐 그 눈이 무서웠는데 어른이 되어서야 그게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지금은 전 세계가 기다리는 공연이지만 폴루닌은 “첫 공연을 올렸을 때 기쁨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고 했다. “러시아 첼라빈스크 초연에 이어 런던에서 공연했죠. 첫 공연 땐 객석 반밖에 안 찼지만, 2주 차 공연 끝날 무렵엔 표 사려는 줄이 몇 블록 늘어섰어요.” 폴루닌은 “저는 이 공연이 행복한 운명을 갖길 기원했고 그 소원이 그대로 이뤄졌다”고 했다.
“영원히 늙거나 낡지 않도록, 평범해지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스노우쇼를 지극히 사랑하는 광대들의 마음은 관객에게도 전해지죠. 이것이 우리 극단의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관객과 함께 나누는 것.” 폴루닌은 “돌아보면 내가 무대 예술에 인생을 바쳤던 것은 창작 활동이 행복에 가닿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 공연은 21일까지. 24~27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31일부터 내달 3일까지 울산 현대예술관 공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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