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69> 어버이날 부모님 산소서 생각한 퇴계 이황의 시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2023. 5.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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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가르치는 것은 논의 모를 억지로 잡아당김과 같고(多敎等揠苗·다교등알묘)/ 큰 칭찬은 회초리로 매질하는 것보다 낫다.

위 시는 조선 시대 큰 학자였던 퇴계 이황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담아 지은 '훈몽(訓蒙)'이다.

조선 시대 가장 덕망이 있는 대학자로 손꼽히는 퇴계도 자식교육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위의 시에서도 읽을 수 있듯 자식교육의 효율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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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칭찬은 회초리로 매질하는 것보다 낫다

- 大讚勝撻楚·대찬승달초

많이 가르치는 것은 논의 모를 억지로 잡아당김과 같고(多敎等揠苗·다교등알묘)/ 큰 칭찬은 회초리로 매질하는 것보다 낫다.(大讚勝撻楚·대찬승달초)/말끝마다 내 자식 어리석다고 말하지 말라(莫謂渠愚迷·막위거우미)/차라리 좋은 얼굴로 칭찬하는 것보다 못하다.(不如我顔好·부여아안호)

위 시는 조선 시대 큰 학자였던 퇴계 이황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담아 지은 ‘훈몽(訓蒙)’이다. 어버이날인 그제 혼자서 고향인 대구 달성군 군청 뒤쪽 갈실마을(노이동) 문중 묘소를 찾아 여러 선조님과 부모님께 절을 올렸다. 고향 여러 산에 흩어져 있던 조상님들 묘를 일일이 화장해 마을 위 ‘청룡밭’에 입향조부터 차례대로 평장(平葬)으로 모셔놓았다. 필자의 함안 조씨 20세 손이자 10대 조인 조미(趙嵋) 할아버지까지 모셔져 있다.

60대 중반인 필자는 3남 1녀(바로 아래 남동생은 20대 중반에 먼저 감)의 맏이다. 못난 장남이 부모님 묘 앞에 한참 서 있다 보니 눈가가 촉촉해지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필자를 키우시던 부모님의 애쓰심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퇴계의 위 시가 떠올랐다.

필자의 가문은 도동서원에 출입하시며 한시 등 글만 짓는 달성 지역의 유학자 집안이었다. 할머님과 어머님, 친척의 증언에 따르면 대대로 집안에 소장한 책이 많아 고령·성주·대구·왜관·합천 등 인근 유학자들과도 교유가 잦았다고 했다. 가까운 고령 성산이 친정인 달성 서씨 가문의 어머님 집안 역시 비슷했다. 필자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께 천자문부터 시작해 한자를 배웠다.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한문과 문학, 역사 등 인문학을 강론하시며 가르침을 주셨다.

조선 시대 가장 덕망이 있는 대학자로 손꼽히는 퇴계도 자식교육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위의 시에서도 읽을 수 있듯 자식교육의 효율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퇴계의 편지도 제법 읽었다. 고향에 계시는 집안의 조근식 형님 댁에 가 차를 얻어 마시며 이야기 나누다 저녁에 목압서사로 돌아오니 일산에 사는 남동생과 서울에 있는 아들 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결혼하지 못한 30대 두 아들은 “어버이날이라서 전화했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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