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 의원님, ‘거지방’으로 초대합니다
메신저 오픈채팅 ‘거지방’이 유행이라기에 들어가봤다. 입장하자마자 쏟아지는 인사는 “거하!”, 거지야 안녕이라는 뜻이다. 거지방의 룰은 간단하다. 지출 내역을 보고하고 실시간으로 평가받는 것. 마침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라고 썼다. 그랬더니 “얼마 썼는지도 알려줘야 함” “오자마자 소비 조장하네, 강퇴할까요?” “스타벅스면 강퇴, 편의점이면 한 번 봐드림” 등 답이 주르륵 달렸다. 스타벅스를 든 손이 머쓱했지만 가장 저렴한 프랜차이즈 이름을 댔다. “앞으로는 퇴근하기 전날 인스턴트 타 놓고 가세요. 다음 날이면 꽤 차가워집니다”, 친절한 조언까지 이어진다.
거지방에 대한 분석이 봇물 터지듯 나온다. 이른바 ‘MZ 세대’ 특유 소비 패턴이라거나 경기 침체에 따른 새로운 사회현상이라는 것이다.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겠으나 체험해본 결과 거지방은 늘 있어온 인터넷 놀이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소비 내역으로 “저를 운반해준 분께 4000원 드렸습니다”라고 하면 “택시 타셨군요”라고 답하는 식의 예능을 지나치게 다큐로 받아서는 곤란하다. 그러니 MZ 세대를 돈 없고 희망도 없는 무언가로 만들려는 시도는 그만, 역대 최악의 경제 상황의 근거로 거지방을 거론하는 무리수도 이제는 그만둘 일이다.
거지방의 발생 근거는 사회경제적 요인보다는 심리적 위안에 있다고 본다. 너도 거지 나도 거지라는 만민 평등의 묘한 연대감과, 내일은 거지가 아닐 거라는 다짐과 격려. 나를 관리해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진 요즘 사람들이 거지방에 빠져드는 이유도 ‘함께 살고 있다’는 실감 때문 아닐는지. 때마침 가상화폐 수십억을 쥐고도 거지 코스프레를 했다는 한 국회의원의 기사가 나온다. 그에게 살며시 거지방 참여를 권해본다. “얼마 투자했는지도 알려줘야 함” “이해충돌이면 강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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