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다, 두 대륙 충돌하는 절묘한 공간… 대항해 시대 여기서 시작했다[주강현의 해협의 문명사]
15세기 포르투갈, 해협 건너 북아프리카 점령… 유럽의 역사적 공간 확장
英, 300년 전 스페인 남부 지브롤터 차지… 해협 둘러싼 영토 분쟁 진행 중
한 해협에서 두 바다, 두 대륙이 충돌하는 절묘한 공간이 있다. 지브롤터해협이 그곳이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고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는 특별한 접경이다. 최단거리 14킬로미터에 불과한데 수심은 무려 300미터에 달한다. 지브롤터해협을 벗어나지 않고는 대서양으로 나갈 수 없다.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 등 지중해가 중심이던 시대에 이 해협의 전략적 가치는 실로 절대적이었다. 지브롤터해협은 고대 신화 세계에서 지중해와 대서양이 접하는 경계였다. 유럽은 지중해 중심에서 대서양으로 확장됨으로써 세계사의 지형을 바꾸었다. 대항해의 단초를 놓은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북단 점령도 지브롤터해협을 넘어가면서 가능했다. 지중해 시대가 대서양 시대로 옮겨간 지 오래지만, 여전히 해협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고대인은 이 해협 양쪽에 거대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서 있다고 믿어왔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에 따라 지중해 서쪽 끝을 세상의 끝으로 믿던 시절이었다. 지중해를 주무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헤라클레스 기둥을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다 보면 어둠과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거인 신 아틀라스가 하늘을 떠받치는 곳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스 기둥 너머에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했다. 거기서 대서양(Atlantic Ocean)이 유래했다. 단테도 ‘신곡’ 지옥 편에서 인간이 더는 넘어가지 않도록 헤라클레스가 경계선을 표시해둔 좁다란 해협이라고 언급했다. 그리스 문학에 지중해 서쪽 끝은 머리 셋 달린 괴물 게리온의 고향으로 등장한다. 그곳에는 세상 서쪽 끝의 축복받은 정원을 돌보는 처녀들인 헤스페리데스의 불가사의한 정원도 있었다.
그런데 신화적 경계와 현실적 역사의 경계는 실제로 달랐다. 신화에서는 분명히 지브롤터가 금기의 경계선이었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그 장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지중해를 석권한 해양민족 페니키아가 그들이다. 고대의 페니키아는 이베리아반도 대서양변에 거점을 마련하고 지중해 무역을 대서양으로 확장시켰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벗어나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한 증거들이 무수히 있다.
스페인 남쪽 대서양변의 치피오나 등대를 찾았다. 스페인의 해양도시 세비야로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에 접근하는 배가 암초와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등대다. 이 암초는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된 문헌과 로마의 고고학 자료에서 이미 확인된다. 암초는 그리스 신화에서 머리 셋 달린 괴물인 게리온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리비아 사막을 지나던 헤라클레스가 이 섬에 들어가 독화살을 쏘아 게리온의 머리를 맞혔다고 한다. 게리온이 죽고 난 다음 무덤이 치피오나의 암초에 만들어졌고, 거기에 등대를 세웠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과감히 돌파해 대서양으로 진출한 페니키아인의 개척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고대는 물론 중세까지 감히 지브롤터해협 밖으로 나가는 일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15세기 말에 이르러 대항해시대에 접어들면서 해협의 경계를 돌파하는 시도가 잇따랐다. 지브롤터해협이 근대적 시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15세기 말부터 유럽의 역사적 공간이 확장되었다. 아프리카로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1단계로 포르투갈은 지브롤터를 넘어서 세우타 정복에 나선다. 세우타는 아프리카 북단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포르투갈인은 세우타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인들끼리 침묵으로 교역하는 것을 목격했고, 동방 향료가 그곳까지 당도함을 알아냈다. 포르투갈이 본격적으로 지브롤터해협을 벗어났다는 것은 지중해적 세계에서 대서양적 세계로 세계관이 무한 확대되었음을 뜻한다. 또한 해협을 건너감으로써 유럽적 세계에서 아프리카로 확장됨을 상징한다.
오늘날의 스페인 국기에 해협을 가로지르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박혀 있다. 하나는 북쪽의 지브롤터,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스페인령 세우타에 세워진 기둥이다. 한때 포르투갈이 개척한 역사는 일찍이 사라지고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첨예한 해협의 제해권은 만만하지가 않다. 오늘날 지브롤터는 영국의 해외 영토이며 주변 바다도 영국 영해다.
영국은 18세기 이래로 이곳의 제해권을 장악해왔다. 1701년부터 1714년까지 무려 13년간 벌어졌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영국이 뛰어들어 지브롤터를 차지했다. 스페인으로서는 자신의 영토에 강력한 비수가 꽂혀 있는 셈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영국은 본국 함대에 버금가는 강력한 해군을 주둔시켜 지중해와 대서양, 유럽의 아프리카 길목을 통제했다. 독일이 지브롤터를 공략하고자 한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지브롤터의 깎아지른 바위산 주변에 해군기지와 비행장이 있다. 인구는 영국,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 유대인, 이탈리아, 몰타인 등 다양하게 구성된다. 영어가 공용어지만, 스페인어와 아랍어도 들린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자국의 영토로 편입되기를 바라지만, 주민들은 스페인령이 되기보다는 영국령을 택했다. 영국의 속령이지만 고도의 자치권을 누린다. 역으로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세우타를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다. 지브롤터해협을 중심으로 주변 바다에서 300여 년에 걸친 영국과 스페인의 영토 분쟁이 지속되는 중이다.
대영제국의 영화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영국이 지브롤터의 목줄을 쥐고 있음은 이 해협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지중해와 대서양, 유럽과 아프리카를 경계지어 온 지브롤터해협에서 헤라클레스의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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