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인간의 평균적 역량과 인공지능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화는 오래전부터 다루어진 문제다. 2300여년 전 장자도 짧지만 강렬하게 이 문제를 언급했다. 장자의 논리는 이러했다. 사람은 기계를 사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계의 마음’을 품게 된다. 따라서 기계는 가능한 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랬다가는 순수함이 깃들지 못하게 된다. 이를테면 기계는 들인 공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해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들인 것에 비해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망 덕분에 인류가 문명의 진전을 일구어왔음은 부인키 어렵다. 늦지 않은 속도로 진보하는 인공지능(AI) 또한 마찬가지다. 키워드를 넣으면 괜찮은 수준의 텍스트나 이미지를 얻었으면 하는 욕망이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빚어냈고, 인간은 이를 바탕으로 더욱 많은 성취를 일궈낼 수 있게 되었다. 하여 기계의 마음을 무조건 경계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은 절대로 인간 역량을 대체하거나 넘어설 수 없다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인공지능에 대한 경계만큼이나 종종 들리는 이러한 목소리는 언뜻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을 능가하지 못하리라는 안도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기계가 인간보다 나을 수 있다는 불안감의 반어적 표현이기도 하다. 기계의 우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도 없다면 이러한 말을 할 까닭이 굳이 없기에 그러하다.
게다가 인간과 기계를 비교할 때 곧잘 빠지는 오류가 있다. 기계의 역량을 평균적 인간 역량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뛰어난 인간 역량과 비교를 한다. 가령 인공지능이 빼어난 지적 역량을 갖추어도 인간의 창의적 지성을 능가할 수는 없다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계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창의적 지성이 필요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대부분은 평균적 역량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수준의 인공지능도 위협적일 수 있다.
기계의 발전을 막자는 뜻이 아니다. 정약용은 하늘이 사람에게 지적 역량을 내려주어 기예를 익혀 스스로 살아가게 했다고 하였다. 기계에 대한 경계와 의지 모두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인 셈이다. 어느 한쪽을 기반으로 한 단정적 언사가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까닭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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