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식량 자급률은 ‘생존’의 문제
예로부터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대적 고민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민주화·산업화를 겪으면서 국가 전체가 이러한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단순히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잘 먹고, 어떻게 잘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됐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다시 ‘생존’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유례없던 코로나19 확산은 보건과 의료 분야의 마비를 불러왔고 이에 따른 국가 간 봉쇄 정책과 얼어붙은 무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경제의 대부분을 수출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왔다.
코로나19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고 각 국가는 생존을 위해 곡창지대의 수출을 막고, 무역 활로를 걸어 잠그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또한 그 파고를 유연하게 넘어가지 못했다.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서 다시 생존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됐고, 특히 자급률에 대해서는 심각한 비상이 걸렸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먹거리가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에 불과하다. 1993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61.3%, 곡물자급률은 33.8%로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자급률은 약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고, 비약적 경제 성장률이 무색하게 자급률은 지금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곡물자급률은 밀 0.7%, 옥수수 0.8%로 1% 미만에 그치고 있다.
자급률은 낮은데, 수입에만 크게 의존하다 보니, 현재처럼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경제 현실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어민들에게 삼중고(三重苦)의 상황이다. 전기세, 난방비도 크게 올라 농민은 농사를 포기하고, 어민은 출어를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아이 성적, 남편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먹거리가 필요한 상황은 분명한데, 정작 먹거리를 만들 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국민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민생이 어렵다는 말은 결국 먹고 살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정부는 민생 해결을 위해 자급률 문제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쌀과 곡물자급률을 높이고 식량안보를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했는데, 정쟁으로만 몰아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우리 농정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매우 안타까운 결정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 비교해 남 탓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말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농가 인구 비율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50세 이상으로 보면 80%를 넘는다. 농촌의 일손은 줄어들고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9.6%인 113곳이 소멸위험지역으로, 45곳이 소멸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는 등 농촌, 지방소멸도 더 이상 미래의 먼 얘기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먹고 사는 문제를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까지 충분히 미뤄온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 먹거리로 생존을 넘어 생활(生活)할 수 있도록 정부·국회·학계·업계 등 모두가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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