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칼럼] 일본은 외교합의를 잘 지켰나

서의동 기자 2023. 5.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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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의 한·일관계는 ‘한국이 외교합의를 위반했다’는 일본의 프레임에 지배됐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갔지만 윤석열 정부는 딱 걸려들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간의 모순’(요미우리신문 인터뷰)을 참을 수 없던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 해법을 몸소 고안해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한국은 국제법을 안 지키는 나라’란 주문을 4년 넘도록 외워온 끝에 일본은 승리했다. 일본 기업들은 배상 책임을 면했고, 서울을 찾은 총리는 ‘마음 아프다’는 개인 감상으로 강제동원의 사과·반성을 갈음했다. ‘국제법을 어긴 한국의 심각한 죄에 비하면 80년 전 고릿적 과오가 무슨 대수인가.’ 윤석열의 가치외교가 빚어낸 가장 스펙터클한 ‘가치전도(顚到)’다.

서의동 논설실장

그런데 그런 일본은 외교합의를 잘 지켜왔던가. 국내 보수층은 일본을 ‘국가 간 약속을 한 치 어긋남 없이 지켜온 모범국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대단한 착각이다. 군국주의 시대는 물론이고, 최근에도 일본은 자기 형편에 따라 국가 간 약속을 저버렸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평양 방문으로 표면화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다 2014년 5월28일 북한이 납치 피해자를 전면 재조사하기로 한 북·일 스톡홀름 합의로 전기를 맞았다. 북한은 합의 직후 새로운 납치 피해자 정보를 제공했다. 다나카 미노루와 가네다 다쓰미쓰 등 납치 피해자 2명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일시 귀국도 허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신속한 후속 조치였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공개도 하지 않고 묵살했다(외무성 관계자가 2022년 9월에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한 바 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이를 묵살한 것은 ‘두 사람만으로는 국민 이해를 얻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나카 가족은 정치적 영향력이 큰 ‘납치피해자가족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가네다는 재일한국인이었던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 캠페인을 십수년째 전개하면서 납치 문제 해결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평소 일본 정부 태도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스톡홀름 합의에 따라 대북 독자제재를 푼 일본은 2016년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유엔보다 앞서 제재를 복원했다. 이로써 합의는 파기됐다.

‘일본판 과거사’인 납치 문제 초기부터 일본은 북한과의 약속을 어겼다.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를 사과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고, 생존자 5명의 ‘2주간 일시 귀국’을 허용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환경이 필요하다’며 돌려보내지 않았다. 북한의 납치 시인에도 북·일 국교정상화 찬성 입장이 66.1%(2002년 10월 내각부 여론조사)에 달할 정도로 일본 여론은 북·일관계 진전을 희망했다. 그러나 ‘전원 생존귀환’을 들고나온 대북 강경세력을 일본 정부가 추종하면서 북·일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북한이 일본인 수십명을 납치한 것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타 국민을 유린한 일본의 전쟁범죄만큼이나 무거운지는 의문이다. 일본은 실현 불가능한 허들을 설정해 납치 문제를 ‘영구미제’로 만들었다.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지위에 서게 된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납치 문제로 얻은 ‘피해자 정체성’을 안보화의 동력으로 활용한 저간의 과정이 추론을 뒷받침한다.

일본은 납치 문제에는 놀라울 정도로 집착했지만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문제엔 소극적이었다. 어떤 이는 한국이 제기하는 과거사는 전전(戰前)에 발생한 것이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1970~1980년대에 벌어진 일이니 별개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수교 상태의 북·일 간에 ‘전전’ ‘전후’ 구분은 의미가 없다. 미수교국과의 합의는 적당히 무시해도 좋은가. 그런 논리라면 어떠한 외교협상도 의미가 없게 된다.

일본은 북한에 이어 한국을 상대로도 ‘(국제법 위반에 따른)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왔고, 한국 보수층이 이를 덥석 수용했다. 그것이 지난 3월 강제동원 해법의 본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일본이 좋아할 이야기이지만, 일본이 북한에 취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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