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위협받는 수단 여성 혁명
2019년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장의 인상적인 사진을 보게 되었다. 흰옷을 입고 베일을 쓴 한 젊은 여성이 자동차 위에 올라가 손을 높이 들고 노래하듯 연설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미지는 몇 개월째 시민 불복종운동과 시위가 계속됐던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찍힌 사진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과 영상으로 대학생 알라 살라는 수단 혁명의 상징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알라 살라는 “총알은 죽이지 않는다.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바로 침묵”이라며 수단 민중들의 동참을 촉구했고, 이 구호는 수단 혁명을 이끈 상징이 됐다.
수단은 조혼, 여성 할례 등 여성 인권에 있어 악명 높은 국가였다. 30년간 수단을 제왕적 권력으로 통치했던 오마르 알바시르는 특히 여성억압정책을 펼쳐왔다. 알바시르 정권 아래에서 이슬람법인 샤리아는 국민들을 억압하는 법으로 악용됐다. 1991년 제정된 국가 공공도덕법에 의해 여성들은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됐다. 아버지나 남성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외출도, 학교 진학도 어려웠다.
수단은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을 비준하지 않은 소수 국가에 속한다. 2022년 기준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8개국에 불과하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수단 여성들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로 인해 수단 혁명은 여성 혁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살해와 성폭력 위협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자유, 정의, 평화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독재와 종교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적인 법 앞에서 고통을 받았던 수단 여성들은 근현대사의 위기마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2019년 민중의 힘으로 알바시르 정권은 무너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독재 체제를 겪은 수단 사회의 안정화와 민주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시위의 최전선에서 목소리를 드높였던 수단 여성들은 여전히 권력 구조 밖에 머물러 있었다. 수단 혁명의 아이콘이었던 알라 살라는 2019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우리는 알바시르의 독재를 끝내기 위해 수십년간 투쟁했고, 위험을 감수했다. 성 불평등은 더 이상 수단의 여성과 소녀들에게 용납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수단 과도정부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 시행을 줄이기 시작했고, 종교와 국가 분리 원칙을 주창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정부에서 최초의 여성 외교장관이 탄생하는 등 수단 여성들의 권리 향상에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수단 혁명은 다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달 수단 정부군과 신속지원군의 충돌로 내전 상황에 빠진 것이다.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7만명 넘는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역 앞에서 평화를 촉구하는 재한 수단인들과 조우했다. 한 수단 여성은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돌쟁이 아이를 안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갖자”고 한글로 쓴 팻말을 든 수단 청년들과 여성 혁명을 이끌었던 수단 여성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다시 꿈꿀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시급하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빗속에 모인 시민들···‘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촉구 대규모 집회
- 트럼프에 올라탄 머스크의 ‘우주 질주’…인류에게 약일까 독일까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나도 있다”…‘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 흔드는 경쟁자들
-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들여다보니…짙게 드리워진 투기의 그림자
- 말로는 탈북자 위한다며…‘북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왜 나 몰라라
- 경기 안산 6층 상가 건물서 화재…모텔 투숙객 등 52명 구조
- [산업이지]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지스타에서 읽은 트렌드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10)“이재명 방탄? 민주당은 항상 민생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