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 정당은 ‘증오·혐오를 선동하는 공장’인가
“서울시가를 걸어가려면 무질서하게 나붙은 광고탑과 횡막수막(橫幕垂幕)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조그마한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큰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섰는가 하면 4, 5층의 큰 건물에는 으레 무슨 무슨 강조 주간이라는 현수막이 매달려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 울긋불긋 무질서하고 난잡하게 붙어 있는 광고 때문에 광고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건물 전면을 뒤덮다시피 해놓아 서울은 마치 ‘간판도시’처럼 돼버렸다.”
“온 나라가 간판과 구호로 덮였다. 도시에 있는 집들의 앞쪽은 문턱에서 지붕 끝까지 무질서한 그림과 글의 뒤범벅이요, 거리는 구호와 현수막의 비빔밥이다.”
‘세계 최악’이라는 말을 듣곤 하는 우리의 ‘간판 공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가? 위에 소개한 3건의 비판은 최근의 것이 아니다. 차례대로 각각 1960년, 1965년, 1974년의 신문(조선일보)에 등장한 것이다.
수십년이 흐른 뒤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상업주의적 탐욕 때문에 ‘간판 공해’가 심해진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상업주의와 무관하게 간판의 기능을 수행하는 현수막을 보자. 1998년 연세대 교수 유석춘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간판 문화’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했다.
“개강을 맞이한 캠퍼스는 온통 현수막으로 뒤덮인다. 총학생회, 학교의 공식기관, 전문학자들의 학술모임, 동아리, 산학협동행사, 연구소, 동문회, 구내서점 등 학내외의 크고 작은 집단이 관계된 행사를 알리는 천 조각이 학기 내내 하늘을 가로지르며 펄럭인다. … 대학의 현수막은 이미 홍보의 기능을 넘어 일종의 공해로 존재한다.”
2005년 경희대 교수 조헌용은 대학의 정문을 들어서면 대학에는 건물도 숲도 없고, 플래카드만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의 플래카드에 가려 뒤의 플래카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기도 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플래카드에 덮인 하늘을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가려지고 닫혀 있습니다. 닫혀진 시선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고서 조금 더 넓게 그리고 멀리 볼 수 있을까요?”
나는 2008년 “한국 간판 문화의 역사: 왜 한국인은 간판에 목숨을 거는가?”라는 장문의 글을 쓰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부터 간판 문제를 다룬 신문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간판 공해’ 비판 기사는 반세기 동안 똑같은 내용과 패턴으로 반복되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특권의식이 만든 ‘정당 현수막’
경향신문 2001년 1월16일자는 “간판문화 이대론 안 된다”는 기획 연재기사를 통해 “간판들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후진적인 한국의 간판 문화, 이젠 메스를 대야 할 때이다”라고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개혁 요구 목소리였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간판 공해’는 구조적 문제가 얽힌 한국의 유별난 문화적 특성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 고민을 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2005년 중앙일보에 “비주얼의 폭력, 간판의 숲”이란 제목의 칼럼을 쓴 소설가 성석제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다 방한한 그의 선배가 저녁에 자신이 살고 있는 신도시의 상업지역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성석제는 “(선배는) 아예 넋을 잃고 원색의 숨가쁘게 점멸하는 간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를 낼 정신도 없는 듯했다”고 밝히면서, 그런 선배에게 다음과 같은 변명을 내놓았다고 한다.
“누군들 좋아서 천박하게 번쩍거리고 싶겠는가. 옆집 앞집 뒷집에서 하니까 가만히 있으면, 아니 평범하게 하면 묻히고 버림받을 것 같은 초조감에 간판도 커지고 자극적으로 변한다.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니까 나도 스피커를 마구 틀어댈 수밖에 없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사는 한국에서 눈에 띄는 방법은 저런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멋진 해석이다. 나 역시 그런 이해심 덕분에 가끔 해도 너무 한다 싶을 경우에 혀를 끌끌 차긴 할망정 ‘간판 공해’나 ‘현수막 공해’에 대해 분노하진 않는다. 그게 바로 ‘한국적 삶’의 현실이라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심이 많은 나조차도 올해 들어 나타난 ‘정당 현수막 공해’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한국적 삶’과는 별 관련이 없으며, 국회의원들의 오만한 특권의식과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무신경·무지·무능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당 현수막 공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방자치단체 허가나 신고 없이 정당 명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안이었다. 이 개정안이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해 12월 시행됐다. 법 개정 전 정당 현수막은 관할 지자체 허가를 거쳐 지정된 현수막 게시대에만 내걸 수 있었지만, 법 개정으로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한 광고물은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 동안 장소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게 됐다.
개정안 시행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이 문제를 다룬 수많은 기사들 중 내가 베스트로 꼽는 국민일보 논설위원 태원준의 “특권 의식이 만들어낸 ‘현수막 공해’ ”라는 제목의 3월17일자 칼럼 내용의 핵심을 소개하겠다.
의원들은 왜 민심을 모르는지
행정안전부는 ① 안전 ② 난립 우려 ③ 일반 사업자와의 형평성 등 세 가지를 들어 반대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의 회의록에 따르면, 의원들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의 ‘특별한 지위’를 내세워 행안부의 반대를 무력화시켰다. 행안부 차관 이재영이 “지금 정당이 44개입니다. 한 당이 하나씩만 걸어도…. 위원님, 죄송합니다만 하나씩 허용하면 정말 하나만 걸까요? 지금 허용하지 않는데도 여러 개 거는데”라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의원들은 사실상 떼를 쓰면서 밀어붙였다. 재석 의원 227명 중 204명이 찬성표를 던진 초당적 특권의식의 승리였다.
의원들은 특권의식은 강했지만, 자신들의 수준에 대한 현실인식은 박약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한 의원은 “저쪽에서 센 현수막을 걸면 당원들이 ‘우리는 안 붙이냐’고 항의해 결국 맞대응을 하게 되고 ‘현수막 전쟁’ 악순환이 격화된다”고 했다. 결국 “윤석열 매국노” “이재명 깡패” 운운해대는 수준까지 나아간 혐오 조장 현수막 경쟁은 정당들의 저질 수준을 폭로하면서 많은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길거리를 걷기만 해도 욕이 나온다”는 불만이 쏟아질 정도였다.
결국 민주당은 정당 현수막의 표시 방법과 장소·기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옥외광고물관리법 재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로써 ‘정당 현수막 공해’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개정안을 주도한 의원들이 져야 할 책임 문제는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 적어도 개정안의 대표 발의를 한 의원들만큼은 사과를 하거나 재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정당 현수막은 하나 만드는 데 10만원이 들어간다는데 이 비용은 국고보조금이나 정치후원금으로 충당된다. 의원들이 자기 돈을 써야 한다면 과연 그런 ‘정당 현수막 공해’ 사태가 일어났을지 의문이다.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정당은 곧 콜럼버스다. 둘 다 출발하면서도 어디로 가는 줄 몰랐고, 가서도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남의 돈으로 했다.”
의원들이 국민 세금으로 이런저런 특권을 누리며 사는 건 문제 삼지 않으련다. 의원들은 정당의 특별한 지위를 내세우지만 오늘날 정당은 사실상 ‘증오·혐오를 선동하는 공장’으로 전락했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국민은 ‘정당·입법’을 가장 부패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의 부패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증오·혐오를 선동하는 건가? 매우 특별하긴 하지만 그러려고 정당을 만든 건 아니잖은가. 자신들이 누리는 특별한 지위에 대한 인식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좋겠다. 의원들은 정당을 “광고주, 일반 사업자나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껴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지만, 일반 사업자 수준의 상식이라도 가져달라는 게 민심임을 왜 모르는가.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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