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출생 대책, 부모의 동등육아 환경 조성에 집중해야
저출산 정책은 5년마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중기 계획을 정하고, ‘기본계획’에 따라 예산과 성과 목표를 포함하는 ‘시행계획’을 매년 세워 추진한다. 정부의 다른 주요 정책도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중심으로 추진되는데, 그 이유는 정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2006년 처음 수립됐고, 2021년부터 4차 기본계획이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저출산 극복에 필요한 주요 정책이 추진됐다. 1차 기본계획으로 양육수당이 도입됐고, 2차 기본계획을 통해 무상보육이 시행됐으며, 3차 기본계획에서는 난임 치료의 건강보험 지원 제도가 마련됐다. 1~3차 기본계획은 결혼·출산·양육에 대한 사회 책임 강화를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4차 기본계획에서는 기존 제도의 개선과 지원 확대를 지속하면서, ‘개인 삶의 질 향상’과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정책 목표로 두고 저출산 정책의 새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일·가정 양립과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 대책을 넘어 ‘생애주기 전반에서의 성평등 노동권 보장’이 저출산 기본계획 전면에 위치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비롯된 정책 방향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성별 임금 격차, 낮은 여성 임원 비율 등을 볼 때 여성의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가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육아휴직 활용 시 여성 비중이 여전히 높고,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로 인해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은 선진국과 달리 M자 형태를 보인다. 분명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의 고착화는 젠더 갈등의 배경이며,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 기본계획은 성평등 노동권 보장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담고 있지는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4차 기본계획에는 ‘과학기술 및 창업 등 유망 분야 여성 진출 지원 확대’ 정책이 들어 있다. 그 자체로 유익한 정책이지만, 여성 과학인 증가와 저출산 문제의 연관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에서 보다 실질적이고 광범위하게 다뤄온 문제다.
또한 저출산 4차 기본계획은 ‘직장 내 성희롱 신속대응, 성희롱 보호 범위 확대’ 등의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성차별과 성희롱 없는 기업 문화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출산·양육에 따른 직장 내 채용, 승진 등의 성차별 문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출산·양육과 관련없는 성희롱 문제 대응까지 저출산 문제와 연관지으면서 저출산 정책의 목표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기업 내 성희롱 문제는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과 ‘남녀고용평등 기본계획’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말이다.
양성평등은 인권의 문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양성평등이 필요하지만 저출산 정책과는 다른 차원에서 더 가치 있게 다뤄야 할 문제다. 현재 저출산 4차 기본계획은 양성평등 정책 몇 가지만 넣고 마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그로 인해 저출산 정책의 목표가 불분명해졌고 백화점식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양성평등은 관련 기본계획과 법규를 통해 더 전문적으로 추진하고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출산 정책은 결혼·출산·양육의 사회책임을 한층 강화하고 부모가 동등하게 육아를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런 환경이 갖춰질 때 양성평등 실현이 가까워질 것이다.
홍석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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