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코끼리 아줌마’는 왜 생일상을 걷어찼나

정지섭 기자 2023. 5.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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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코끼리에게 목숨잃는 사람들 수백명
불가능하다던 아프리카-아시아코끼리 교배종도 실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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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어린 시절 국민동요로 사랑받던 이 노래, 많은 분들이 쉽게 흥얼거리실 겁니다. 귀를 펄럭이며 동그란 눈망울을 껌벅이며 날아가던 아기코끼리 덤보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나요?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50살 암컷 아시아코끼리 '마이카이'가 생일 축하 상자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신시내티 동물원 페이스북 캡처

사람들의 창작물에서 코끼리는 이처럼 친근하고 인간적인 짐승으로 그려집니다. 수명과 성장주기가 사람과 엇비슷하다는 점,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 나이들고 현명한 암컷이 이끌어가는 모계 사회 등 자연다큐멘터리에서 그려지는 모습 역시 ‘인간다운 짐승’의 모습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이런 특징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위험한 괴수인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아프리카 사바나와 아시아의 열대우림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물원 코끼리도 때로는 터프한 일면을 보여주는데요.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동물원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동영상을 잠깐 보실까요?

얼마 전 이 동물원에서 50살 암컷 ‘마이 타이’의 생일 잔치가 열렸습니다. 사육사들이 ‘지천명’ 에 이른 식구를 위해서 생일상을 마련했어요. 금색과 푸른색으로 치장된 상자 위에는 50이라는 숫자까지 얹혀져있는 생일상입니다. 하지만, 안그래도 나이들어가는게 심란한데 굳이 동네방네 떠벌리는 사육사들의 모습에 심사가 뒤틀린 것일까요? 생일상을 향해 걸어가던 ‘마이 타이’는 발길질로 정성 들여 준비한 축하 장식물을 무너뜨립니다. 코로 생일 축하 초라고 할 수 있는 숫자 ‘50′도 내동댕이칩니다. 70세 정도까지 사는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입니다. 쉰살이면 사람으로 쳐도 아저씨·아줌마 혹은 할아버지·할머니에 해당하는 나이일테죠. 이 코끼리는 왜 이렇게 까칠한 모습을 보일까요? 동물원 측 설명을 듣고 나면 오해였음을 알게 됩니다. 노쇠한 코끼리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행동 풍부화프로그램이라는 것이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발질길과 코흔들기만으로 상자를 짓뭉개버리는 모습은 이 동물이 가진 압도적 체력을 가늠케 합니다.

인도 카비니 국립공원에서 아시아코끼리가 지프차를 들이받을 기세로 쫓아오고 있다. /extreme_media youtube 캡처

코끼리와 인간은 사실 오랜 세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상아 노획 등을 앞세워 코끼리 사냥에 앞장서온 사람의 공세에 밀려 코끼리의 숫자는 아프리카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이와 별개로 코끼리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례도 꾸준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인도 한곳에서만 해마다 100여명이 코끼리 발길질 등에 비명횡사합니다. 케냐에서는 최근 7년간 200여명이 밟히거나 내동댕이쳐지면서 목숨을 잃었거요. 두 나라만 집계한 것이니, 전체적으로는 코끼리에게 살해당하는 사람이 1000명이 너끈할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인도 카비니 국립공원에서 성난 아시아코끼리가 후진하는 사파리 차량을 들이받을 기세로 쫓아오는 장면 담은 동영상(extreme_media youtube) 보실까요?

코끼리의 거친 성질과 압도적인 파워는 앞서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코끼리가 기본적으로 살인병기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건 눈에 뵈는게 없어지는 발정기의 수코끼리라는 이야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분노한 암코끼리가 사바나의 괴수 악어를 짓밟아뭉개며 그 자리에서 악어핸드백을 만든 살벌한 이야기 등이죠. 이 괴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종류는 총 세 종류(아프리카코끼리·둥근귀코끼리·아시아코끼리)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아프리카코끼리·아시아코끼리의 양강구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커다랗게 펄럭이는 귀를 가진 사나운 코끼리’는 아프리카 코끼리이고, ‘조그만 귀를 가진 온순한 코끼리’는 아시아코끼리라는 이분법이 있는데요. 이 외에도 둘을 구분지어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다란 코의 끝 콧구멍을 보면 아프리카코끼리는 위아래가 불룩해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인 반면 아시아코끼리는 위만 불룩해 전체적으로 세모졌습니다. 아시아코끼리가 둥글고 한가운데가 솟아오른 등을 가진 반면, 아프리카코끼리는 등 한가운데가 조금 패어있고요. 코끼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엄니(상아)의 경우 아프리카코끼리가 암수구분 없이 엄니가 길다랗지만, 아시아코끼리의 경우 수컷의 엄니가 두드러지게 큽니다. 그래도 두 종을 구분지어주는 확실한 특징은 바로 귀죠.

큰 귀와 기다란 엄니(상아)가 특징인 아프리카코끼리. /신시내티 동물원

월트디즈니의 고전만화영화 ‘아기코끼리 덤보’에서 서커스단에 소속된 어미와 그 동료들은 작고 세모진 귀를 갖고 있어 모로 봐도 확연한 아시아코끼리로 그려집니다. 반면 덤보는 커다란 귀를 펄럭이는 별종으로 그려져, 코끼리 집단에서는 천대를 받죠. 물론 그 귀덕분에 나중에 상(象·코끼리)생역전에 성공하지만요. 여기서 좀 더 음험한 가정을 해보자면, 덤보의 그 커다란 귀는 아빠의 유전자로부터 비롯됐을 수 있겠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아프리카 코끼리와 아시아 코끼리의 정열의 사랑의 열매라는 거죠. 그렇다면 실제로 두 종 사이 교배가 가능할까요?

세모진 작은 귀가 특징인 아시아코끼리. /스미스소니언동물원

전문가들은 ‘코끼리’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있지만, 두 종 사이의 유전적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설사 짝짓기를 하더라도 임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 단언을 뒤집어버린 유일한 사례가 있기는 합니다. 역사상 유일한 아프리카·아시아코끼리 교잡종이 1978년 영국 체스터 동물원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아프리카코끼리 수컷 점보리노와 아시아코끼리 암컷 셰바 사이에서 태어난 ‘모티’인데요. 이 아기 코끼리는 안타깝게도 태어난지 2주만에 숨졌습니다.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 사이의 유일한 교배종으로 알려진 '모티'. 1978년 영국 체스터동물원에서 조산으로 태어나 2주만에 죽었다. /UPALI.CH

예정보다 6주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사육사들의 집중 돌봄을 받았지만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았다고 해요. 모티는 아비처럼 큼지막한 아프리카 코끼리의 귀를 가졌고, 몸통과 다리 등은 어미와 같은 아시아코끼리의 모양새를 가졌다고 합니다. 생전의 사진을 보면 정말로 ‘아기코끼리 덤보’의 실사판을 방불케 합니다. 유전적 차이를 극복하고 어떻게 이 코끼리가 탄생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하네요. 이래저래 코끼리는 정말 신비로움이 감도는 영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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