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온하정(冬溫夏凊)'의 재정 원칙 [한국의 창(窓)]
경기 변동 줄이는 재정지출 조절 정책
올해 세수부족, 경기부진이 직접 원인
불필요 지출 감축, 국채발행이 대응책
겨울에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 시원하게 한다는 뜻의 '동온하정(冬溫夏凊)'이라는 논어(論語)의 구절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도리에 대한 글이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섬기는 방식인 재정도 그 원칙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가 과열될 때는 정부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 경기를 진정시키고 경기가 부진하면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여 경기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경기대응성(counter-cyclical) 재정정책인데, 일종의 '동온하정'의 원칙이다.
지금은 재정정책의 당연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인식이 시작된 것은 대공황을 경험한 1930년대 이후여서, 실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사용할 재원을 조달하고 이를 지출하는 '재정(財政)' 개념 자체는 국가의 존재와 함께 오래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정책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원칙은 비교적 현대에 들어 정립된 것이다. 이때가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 대응을 강조하는 케인지안 경제학이 출현한 시점이기도 하다.
재정정책을 사용할 때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려면 경기대응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경제학 이론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려운 점은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이는 방향은 현실화가 쉬워도 그 반대의 경우는 정치적인 제약으로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 재정정책의 비대칭성이라는 요소인데, 그래서 국민을 설득해 정부지출을 줄이는 긴축이나 세금을 증가시키는 증세가 재정당국의 중요한 책임과 역할로 강조되곤 한다.
그런데 정부지출 확대와 감세 자체가 재정지출의 근본 원칙이 아니듯이 마찬가지로 긴축과 증세도 그 자체가 목적이거나 원칙은 아니고 결과적으로 강조된 부분이다. 재정지출 의사결정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원칙은 '예비 타당성 검사'와 같이 지출사업이 타당성과 경제성을 갖췄는지 제대로 점검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타당성을 평가하고 사업의 우선순위를 매긴 후, 긴축 시기에는 시행할 사업의 숫자를 줄이거나 규모를 축소하고 지출확대 시기에는 시행 가능한 사업의 숫자를 늘리거나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1분기 국세수입이 작년 동기 대비 24조 원 감소하면서 정부지출을 위해 사용할 세수가 부족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세수 감소가 주로 어디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핵심은 기업 실적 악화에 따른 법인세 감소와 부동산·주식시장 부진에 따른 양도소득세 감소 그리고 소비 회복이 충분하지 않아 발생하는 부가가치세 감소 등에 기인한다. 쉽게 말해 경기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세수(稅收)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국민에게 부담을 추가로 지우는 증세에 나선다면 이는 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세수 확보 방법은 경기 대응 재정정책과는 정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고, 그 결과 경기는 더욱 후퇴하며 세수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더욱이 이런 때 세무당국이 사실상의 증세를 위해 세율은 그대로 있더라도 조세 집행 강도를 높이려 시도하면 가뜩이나 경기 부진에 시달리는 국민의 불만을 고조시킬 수 있어 특히 주의해야 한다.
경제성과 타당성이 떨어지는 지출사업을 위해 지속적인 확장재정을 수행하면서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유의해야 하지만, 경기 부진과 관련 깊은 현재 같은 일시적인 세수 감소 상황에서는 일단 불필요하거나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을 축소하는 작업으로 일차적으로 해결하되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무리한 증세로 부담 지우기보다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 조달을 고려하는 것이 '동온하정(冬溫夏凊)'의 정신에 입각한 적절한 재정정책 원칙에 부합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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