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김일성 車가 전쟁기념관에 있는 까닭은
별세 후 부인에 하사… 韓 돌아와
6·25 ‘10대 영웅’에선 빠져 아쉬워
참전용사 한 명 한 명이 모두 영웅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이색 전시물 중 하나가 김일성 관용차다. 1948년 소련(현 러시아)에서 만든 ZIS-110 리무진이다. 스탈린이 김일성한테 선물로 줬다.
김일성 차까지 하사받다니, 워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제1·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워커는 6·25전쟁 초반 중장 계급장을 달고 주한미군을 이끌었다. 중공군 개입으로 전쟁이 새 국면을 맞은 1950년 12월 지프차를 타고 전투지휘소로 가다가 경기 의정부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이승만이 워커 부인한테 김일성 차를 건넨 건 남편의 비극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대장으로의 진급이 추서된 고인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얼마 전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사령부가 공동으로 6·25전쟁 10대 영웅을 뽑았다. 한·미동맹 70주년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기념하는 의미에서다. 미군 장성 중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제임스 밴플리트 대장만 들어갔다. 납득하기 어려우나 워커는 빠졌다.
6·25전쟁의 가장 결정적 장면은 무엇일까. 다수는 인천상륙작전부터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단연 낙동강 방어선 전투다. 1950년 8∼9월 한국 영토는 영남 지역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방어선이 뚫리면 대구는 물론 임시수도 부산마저 북한군 수중에 떨어질 판이었다. 만일의 경우 한국 정부를 태평양 어느 미국령 섬으로 옮기는 계획까지 수립됐다. 국가 존망이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방어선 사수 책임자가 워커였다. 그는 병사들한테 “지켜라, 못하겠거든 죽음뿐”(Stand or die)이라고 외쳤다. 당시 미군 가운데 한국이 대체 어떤 나라인지,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윌리엄 맨체스터가 쓴 맥아더 전기에 소개된 일화다. 시카고 출신의 한 병사가 종군기자한테 투덜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미국)를 위해 싸우겠지만 왜 이 지옥 같은 나라(한국)를 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그런 미군 장병들한테 워커는 대놓고 희생을 요구한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면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을까. 한국은 지금 대만과 같은 처지가 됐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도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방어선을 지킨 덕분에 살아남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미국과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 가치를 공유하는 핵심 파트너가 됐다. ‘한·미동맹의 심장부’로 불리는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웅장한 동상이 세워진 인물은 맥아더도, 밴플리트도 아닌 워커다.
방어선 사수가 워커만의 공은 아닐 것이다. 지난달 미 워싱턴 6·25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윤 대통령이 평범해 보이는 미국인 노부부와 마주했다. 미군 전사자 루터 스토리 상병의 유족이었다. 그는 1950년 9월 1일 경남 창녕에서 낙동강 방어선 전투 도중 숨졌다. 당시 나이 고작 19살이었다. 스토리의 유골은 최근에야 신원이 확인됐다. 우리 대통령 부부가 직접 유족을 위로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스토리 상병부터 워커 장군까지 모두 하나 돼 방어선을 지켜냈다. 당국이 숫자를 맞추느라 고심한 10명 안에 들었든 안 들었든 참전용사 전부가 영웅이다. 그분들 한 명 한 명의 절절한 스토리(사연) 위에 오늘의 한국이 서 있다.
김태훈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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