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비 부담에 ‘울며 겨자 먹기’…반도체 감산의 딜레마[박동흠의 생활 속 회계이야기]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도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했다. 반도체 생산을 줄인다는 뉴스가 전해지자마자 삼성전자 주가는 4% 넘게 올랐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해 판매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주가가 반짝 상승했지만 경영진 입장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반도체는 고정비가 너무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원재료비 같은 변동비는 생산량에 비례해서 발생하기 때문에 감산하면 자연스레 원재료 매입도 덜 하게 되지만 고정비는 줄일 수가 없다. 생산량과 관계없이 기본적인 고정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감산하면 단위당 생산원가가 커지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냉면 전문점을 운영하면서 매달 임차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로 800만원의 지출이 발생한다고 가정해보자. 냉면 재료비는 그릇당 2000원이고 한 그릇의 판매가격은 1만원이다. 한 그릇이 팔릴 때마다 8000원의 마진이 남는 셈이다. 고정비 800만원을 건지려면 한 달에 냉면을 1000그릇을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고정비는 변동이 없다.
장사가 잘 안되어서 800그릇밖에 못 팔았다면 냉면 한 그릇당 고정비는 1만원이 된다. 한 그릇당 재료비 2000원을 더하면 총 원가가 1만2000원이니까 손해가 막심하다. 반대로 장사가 너무 잘되어서 이번 달에 2000그릇을 팔았다면 냉면 한 그릇당 고정비는 4000원이 된다. 한 그릇당 재료비 2000원을 더하면 총 원가가 6000원이니까 한 그릇당 4000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 판매량보다 이익의 증가세가 더 커지게 된다.
다시 반도체 기업들을 살펴보자. 반도체만 전문으로 생산하는 SK하이닉스의 재무제표를 보면 2022년에 발생한 영업 관련 비용은 총 38조원인데 이 중 재료비 사용액은 29%인 11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감가상각비, 인건비 같은 고정비 성격의 비용들이다.
문제는 매년 시설 투자를 공격적으로 했기 때문에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가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비중이 큰 고정비가 더 증가하는 상황에서 생산량을 줄이면 제품당 원가가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정말 공급 부족으로 인한 판매가격 상승효과가 나와야만 높은 생산원가를 상쇄시킬 수 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증산해서 제품 단위당 원가를 줄여 이익을 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재고자산이 쌓인다는 문제가 생긴다. 적체된 재고자산이 진부화되어 판매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지면 즉시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실제로 2022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1조원, 4조원 이상의 재고자산을 손실로 떨어냈다. 즉 생산량 증가로 제품 단위당 원가를 낮출 수는 있지만 쌓이는 재고가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반도체 기업들이 감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장의 바람대로 반도체 산업이 올해 바닥을 찍고 다시 회복할지 매우 불확실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라 과거부터 손익의 증감 폭이 매우 컸다는 것이다. 지금은 하락 사이클에 놓여 있는 상황이니까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단, 대내외적인 경제 여건과 외교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이라 섣불리 빠른 회복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이 고통의 시간은 분명히 지나갈 것이다.
박동흠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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