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적들이 러시아 파괴하려 해…진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방 겨냥 강도 높은 표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전승기념식에서 “우리 조국을 상대로 진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적들은 우리의 붕괴를 바란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파괴하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쟁’이란 언급 자체를 꺼려 온 푸틴 대통령이 ‘진짜 전쟁’이란 표현으로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린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봄철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가 추가 동원령에 나설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전쟁’이라는 표현을 금기시해왔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표는 가능한 한 빨리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은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지난해 9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동원령을 내린 데 이어 추가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프라우다는 전날 남부 러시아 점령지 마리우폴에서 징집절차가 시작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약 10분간 이어진 이날 연설에서 “소련 국민들이 나치 독일에 대한 승리에서 했던 역할을 기억한다”면서 “그들(서방)은 누가 나치를 물리쳤는지 잊어버렸다. 서방 엘리트들이 러시아에 대한 증오의 씨앗을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전승기념식에는 독립국가연합(CIS)의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벨라루스의 대통령과 아르메니아 총리가 참석했다. 전승절은 1945년 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것을 기념하는 러시아 최대 기념일이다. 매년 전승절마다 각 도시에서 군대와 무기가 동원되는 열병식과 시민들이 참전 용사들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불멸의 연대’ 등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푸틴 대통령은 전승절 행사를 러시아의 군사적 힘과 정권의 정통성을 과시하는 대형 이벤트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두 번째 맞는 올해 전승절은 우크라이나의 공격 가능성을 우려해 20개 이상 도시에서 열병식이 취소되거나 축소됐고 불멸의 연대 행사도 여러 지역에서 취소됐다.
우크라이나의 ‘봄철 대반격’이 가까워지면서 전황은 점점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에 대비한다며 주민 대피령을 내린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에서는 주유소 기름이 바닥나고 슈퍼마켓 물건이 동나는 등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인근 에네르호다르에서는 병원 장비가 약탈당하고 의약품 값이 크게 올랐다. 라파엘 그로기 IAEA 사무총장은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점점 예측할 수 없고 잠재적으로 더 위험해지고 있다”며 심각한 핵사고를 우려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드론과 로켓을 동원해 맹공격을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바흐무트에서도 전투가 재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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