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탈권위주의’ 새바람…20년 철옹성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김서영 기자 2023. 5. 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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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치러질 대선…표심은 어디로?
에르도안 대통령,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후보
대지진·경제난 등 영향, 지지율에선 야권 후보가 앞서
‘선거의 제왕’ 에르도안, 파격적 선심 공약으로 승부수

“내 논리는 에르도안이라고 말하지만 내 마음은 클르츠다로을루라고 말한다.”

오는 14일(현지시간) 치러질 튀르키예 대선·총선을 앞두고 한 21세 청년은 블룸버그통신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에 생애 첫 투표를 하는 500만 유권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에르도안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 나라의 지도자였다.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분위기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은 튀르키예 표심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번 선거는 20년 동안 집권한 ‘스트롱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다.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후보를 필두로 하는 튀르키예 야권이 승리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85%에 달하는 물가상승률이 상징하는 ‘민생 실패’와 5만명 이상이 숨진 ‘대지진 참사’가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발목을 잡았다. 야당·언론 탄압을 일삼은 권위주의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지친 분위기도 있다.

이 분노한 민심의 향방이 이번 선거 결과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9일 기준 최근 일주일간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지지율 47.3~54.2%로 에르도안 대통령(41.9~46.1%)을 앞섰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강하고 직선적인’ 이미지와 대조적인 인물이다. ‘튀르키예의 간디’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선거 캠페인에서도 유권자에게 “나는 에르도안과 정반대다. 여러분처럼 겸손한 삶을 살고 있다”고 강조하며 에르도안 정권의 부패 혐의 및 권위주의적 이미지와 거리를 뒀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사법권 독립 강화, 중앙은행 통화정책 독립,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 복귀 등 에르도안의 유산을 철회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결과를 단정하긴 이르다. 포린폴리시(FP)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쉽게 물러나지 않으리라 전망했다. 무엇보다 에르도안은 대중적 지지 기반과 국가기관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모두 쥔 전례 없는 대통령이다. 에르도안은 이번에도 ‘선거의 제왕’으로서 면모를 드러냈다. 가장 큰 약점인 경제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최저임금 55% 인상, 노동자 230만명 정년 폐지, 공무원 임금 30% 인상 등을 내걸었다. 튀르키예 지진 관련 부패 혐의자들을 엄벌하고, 피해 지역을 1년 내로 복구하겠다고도 했다. 최근엔 클르츠다로을루 측을 두고 “LGBT(성소수자) 친화적”이라고 비난하는 등 야권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야권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번 대선의 투명성과 공정함을 둘러싼 우려가 이미 나오는 중이다. 이는 현 정권이 과거 선거에서 반복한 ‘찜찜한’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FP에 따르면, 2014년 지방선거 당시 AKP 소속 후보가 앙카라 시장직에서 패배할 것처럼 보이던 시점에 최고선거위원회의 투표 집계가 수 시간 동안 갑자기 중단됐다. 이후 집계는 AKP 후보가 앞서나가는 것으로 재개됐고, 이에 대한 야당의 소송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2017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한 대통령중심제 전환 개헌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할 때도 선거감독관들은 공식 인장이 없는 투표용지까지 집계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도장이 찍히지 않은 투표용지가 얼마나 나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결국 개헌안은 약 51% 찬성으로 통과됐다.

‘에르도안 타도’라는 단일 기치 아래 하나로 모이긴 했으나 정치집단으로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것도 현 야권의 약점으로 꼽힌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대표하는 6개 야당 연합은 ‘반에르도안’ 외에는 공통 기반이 거의 없다. 이는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을 함께 치르는 이번 선거 이후 의회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튀르키예 대선은 선거 결과에 따라 국제질서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군대를 보유한 나라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해왔으며,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도 방해했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는 에르도안 정권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승리할 경우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나토 회원국으로서 정체성을 다질 가능성이 있다. 에르도안이 어깃장을 놓고 있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원활해질 것으로 보이며, 서방의 대튀르키예 경제 투자가 늘어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14일 치러지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 과반을 이룬 후보가 없을 경우 이달 28일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최근 일주일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에르도안 대통령을 앞서가긴 하나, 지지율 50%를 넘긴 적은 두 차례밖에 없다. 결선투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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