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척지고, 일과 불안한 동행…미국 국익에 갇힌 ‘외교’

박은경 기자 2023. 5. 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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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정책, 인·태전략 등 미 ‘버킷리스트’ 실행에 끌려가
‘한·미·일 vs 북·중·러’ 인식, 핵 위협 등 한반도 불안감 높여
윤 대통령, 후보 때 “국익 우선, 당당한 외교” 공약 형해화돼

10일 취임 1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첫 외교 일정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일이었다. 취임 후 11일 만인 지난해 5월21일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새 행정부 출범 후 가장 빠른 정상회담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윤 대통령의 지난 1년은 모든 책임을 내가 질 테니 나를 따르라는 식의 ‘일방주의 외교’로 채워졌다.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의 외교정책을 일치시키고, 미국의 ‘버킷리스트’를 차곡차곡 실행해왔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한·미·일 3각 협력을 내세웠고, 이 중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의 개선을 향후 1~2년 내 추구해야 할 핵심 계획으로 제시했다. 한·미·일 3각 채널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핵심 기술 등 공급망에서 협력을 강화하며, 대만해협 등 동맹에 대한 공세적 억지력도 키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미 정상회담 뒤 윤석열 정부의 외교 행보는 바쁘게 이어졌다. 지난해 6월과 11월 각각 스페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와 캄보디아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열고 3각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해 12월에는 자체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시했다.

큰 그림을 그린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실행계획으로 제시한 한·일관계 개선에 나섰다. 지난 3월6일 굴욕 외교 논란을 빚은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발표를 강행했고 16일 한·일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세계무역기구 제소 취하,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 일본에 선제적 양보를 거듭했다.

한국 윤석열, 미국 조 바이든, 일본 기시다 후미오(위 왼쪽부터), 북한 김정은, 중국 시진핑,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아래 왼쪽부터)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강제동원(징용) 해법에서는 한국 정부가 최소한 지켜왔던 원칙을 무너뜨리고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며 “매우 잘못된 외교인 데다 기본 입장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어 오랫동안 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한·일 간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가져온 미국은 즉각 환영했다.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을 마친 윤 대통령을 국빈방문이라는 최고의 예우로 환대했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은 지난 1년간 주변 정세를 블랙홀처럼 흡수하는 느낌”이라며 “미·중 사이 중간적 입장이었던 한국 외교가 독자적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으면서 미국으로 기울었고 이번 회담으로 완전히 쏠렸다”고 평가했다.

한·미·일 협력 강화는 북·중·러 공조를 통한 북핵 미사일 위협의 고도화, 한반도 정세 불안 고조 등 부작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는 ‘역린’인 대만해협 문제가,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여부 등 예민한 이슈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급격히 냉각시킨 원인이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 나왔다는 점도 불안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윤 대통령의 즉흥적인 외교로 2021년 9월 후보 시절 밝혔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당당한 외교”는 형해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외교안보 전략에 관한 여야의 기본 묵계인 ‘한·미 동맹 중시와 대중·대러 적대관계 전환 불원’이라는 한국의 전통적 외교안보 프레임을 바꾸고 있다”면서 “미국의 국제정세 인식 프레임을 적극 수용한 윤석열 정부는 현 세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진영, 특히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고 우크라이나전 참전 가능성까지 언명하면서 러시아와의 충돌 가능성도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의 가치 치중 외교에 따른 대중·대러 리스크 증가와 남북 군사적 긴장 고조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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