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날 청소 핑계, 새 세입자 들이고 잠적…전세사기, ‘보증보험’도 소용없었다
유사 피해 사례 20여명…여야, 10일 ‘공회전 특별법’ 재논의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이사 당일 “입주 청소를 하려고 한다”며 집을 비우게 한 사이 새 세입자를 들이고 잠적하는 신종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9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전세사기 피해자 A씨(31)에 따르면 그는 2019년 8월 언니, 동생 등 세 명과 함께 인천 부평구의 한 신축빌라에 입주했다. 이후 각자 독립해 살기로 하면서 2021년 7월26일 이사를 가기로 했다.
임대인 B씨는 이사 당일 A씨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B씨는 대신 “새 세입자가 이날 들어오기로 했으니 입주 청소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A씨가 언니의 이사를 돕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들어온 새 세입자는 집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집 안에는 전자레인지, 신발 등 A씨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경찰은 “법적으로 새 세입자도 계약상 권리가 있기 때문에 조치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A씨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들어놓은 상태였기에 HUG에 “임대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고 있다”며 “전세보증금 대위변제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HUG는 “A씨가 이미 집을 나왔기 때문에 대항력이 없다”면서 “HUG 면책규정에 따라 보증금 대위변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A씨는 해당 주택에 대한 임차권 설정등기를 통해 전세보증금 채권 2억1000만원이 있다는 것을 등기부등본에 명시했다.
또 새 임차인을 상대로 명도소송도 제기해 집을 되찾은 뒤 다시 HUG에 대위변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HUG는 이번에도 “돌려줄 수 없다”고 A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A씨가 명도소송을 하는 사이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임대인 B씨의 전세사기가 드러났고, 경매과정에서 B씨 명의의 2억원 상당 조세채권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HUG는 조세채권 2억원이 A씨 보증금채권에 앞선다는 것을 대위변제 거절 이유로 들었다. A씨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고 싶으면 우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는 말을 듣고 현재 변호사 선임을 준비 중이다.
현재 A씨와 유사한 형태의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사람은 피해자들이 자체적으로 찾은 결과 2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HUG 관계자는 “최대한 A씨를 도울 방법을 찾아봤지만, B씨의 조세가 체납된 시점이 A씨가 점유를 되찾은 시점보다 앞서기 때문에 HUG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 공동센터장은 “제도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억울한 피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를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제도의 허점과 사각지대를 빠르게 찾아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야는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열어 전세사기 피해 관련 특별법안을 재논의할 예정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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