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막혀 집회 막는다는 대통령실 인근 서빙고로, 경찰 기준보다 빨랐다
대통령실·관저 ‘집회 차단용’ 꼼수
차량 속도 실측 32.23㎞/h 기준 밖
경찰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2조 시행령을 개정해 ‘주요 도로’에 새롭게 추가하려는 용산 대통령실 인근 도로 일부가 경찰이 제시한 ‘주요 도로’ 지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도로’로 지정되면 관할 경찰서장 재량으로 ‘교통 소통’을 위해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 대통령실 앞 집회를 차단하기 위한 경찰의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은 지난 2월 집시법 12조가 명시한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등 11개 도로를 추가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집시법 12조는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할 경우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경찰은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서 서울 시의 기존 16개 도로에 더해 ‘백범로-이태원로-다산로’ ‘서빙고로’ ‘영동대로’ ‘남부순환로’ 등 4개를 ‘주요 도로’로 추가했다. ‘백범로-이태원로-다산로’와 ‘서빙고로’는 용산 대통령실을 둘러싸고 있는 도로다.
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국회 제출 답변서에서 경찰청은 “주요 도로는 교통 소통을 가장 주요한 판단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번에 통과된 도로는 기존 주요 도로 88개 차량속도 평균인 26.56㎞/h를 고려해 추가로 지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주요 도로의 평균 속도보다 떨어지는 구간을 주요 도로로 정해 교통 소통을 원활히 하겠다는 취지다. 개정 근거로 활용한 차량속도 통계자료 요청에는 “제공 불가”라고 했다. 경찰이 주요 도로 신규 지정 및 해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경향신문은 경찰청 답변을 근거로 시행령 개정안에 ‘주요 도로’로 추가된 용산 인근 2개 도로의 평균 속도를 확인했다. 서울시 교통정보 시스템(TOPIS)의 도로별·일자별 통행속도 데이터에서 경찰이 지정한 주요 도로 구간을 추출해 월평균 시간대별 통행속도를 분석했다. 분석 범위는 평일 기준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로 한정했다. 차량속도 분석 결과, 서빙고로는 경찰이 제시한 ‘주요 도로’ 설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서빙고로를 지난 차량의 평균 속도는 32.23㎞/h였다.
교통 정체가 가장 심한 순서로 시간대를 나열하면 오전 10시(28.02㎞/h), 오후 7시(29.39㎞/h), 오전 11시(29.88㎞/h) 순으로 집계됐다. 모두 경찰이 기준으로 제시한 26.56㎞/h를 상회하는 수치다.
같은 조건에서 지난 1월 평균속도를 집계한 결과 역시 30.50㎞/h로 기준치에 부합하지 않았다. 지난 2월 평균속도도 30.36㎞/h로 비슷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서빙고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하려는 것은 대통령 출퇴근길 의전·경호상 목적이 주된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 연장선에서 서빙고로에서의 집회·시위를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서빙고로는 용산 대통령실 남측 도로로,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출발해 대통령 집무실에 이르는 출퇴근길과 겹친다. 경찰 계획대로라면 개정 시행령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집시법 12조의 핵심이 교통 소통이다보니 평균 차량속도를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것”이라면서도 “도로 여건이나 통행량, 인접 주요 시설, 우회로 여부, 집회 개최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요 도로 범위 개정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오래전부터 개정을 준비해온 만큼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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