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바디올로지] 각자도생의 공기 사회, 숨쉬기 어떤가요
인간의 욕심에 숨쉬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만 해도 최근 10여년 동안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신종플루, 메르스, 폭염이라는 강렬한 호흡 재난을 겪어 왔다. 숨 막히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한국은 ‘각자도생의 공기 사회’가 되었다. 숨은 공평하지 않다. ‘공기 자본’을 가진 자본가와 그것이 없는 노동자는 숨의 질 자체가 다르다. 숨쉬기는 세균부터 대왕고래까지 모든 생물이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 활동이다. 이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숨쉬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무게일까.
“나 숨 쉬는 공간에 니 숨결 남아 있는 거 못 참아. 행여 숨 쉬다 니 숨결까지 들이마실까, 그러다 그 인간 숨결까지 마실까 토 나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아이유)이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광일(장기용)에게 내뱉는 말이다. 과연 지안은 광일의 숨을 들이마시게 될까? 나의 숨과 남의 숨이 섞이는 것은 과학적으로 가능할까?
결론은 ‘가능하고말고’다. 1970~80년대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던 김정흠(1927~2005)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1977년 한 신문에 ‘충무공의 마지막 숨’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수백년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내쉰 마지막 애국적 호흡에 들어 있는 분자들은 지금 우리가 들이마시는 한 호흡 속에도 들어 있으니 자부심을 갖고 애국심을 기르라는 결론이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이충호 옮김)을 쓴 미국의 과학작가 샘 킨은 몇발 더 나아간다.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4년 암살당할 때 자신의 추종자 브루투스를 보고 “너도냐?”라고 말한 뒤 내쉰 1ℓ 정도의 마지막 숨에 그는 눈길을 준다. 숨 1ℓ에 든 분자 수는 약 270해(27,000,000,000,000,000,000,000)개에 해당한다. 1해는 10의 20제곱, 1경의 1만배다. 270해개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에 가깝다. 분자는 아주 단단해서 시간이 가도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 지구대기권 아래 돌아다니던 이 분자들은 하루에 2만번씩 공기를 들이마시는 인간의 숨 속을 파고든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을 우리가 한번이라도 들이마셨을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폼페이 화산 폭발로 숨진 사람들, 어떤 동물이건 마지막 숨은 모든 이의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다고 샘 킨은 설명한다.
마지막 숨에 포함된 분자 이야기는 물리학계의 오래된 확률적 사고 실험이다. 이 이론은 지구 위 모든 생명체가 ‘호흡공동체’를 이뤄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은 별이 죽으며 남긴 우주의 먼지에서 탄생한 생명체라고 한다. 별의 자식들이 내뱉은 숨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 멋진 건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죄책감을 더 크게 불러온다. 인간들이 지구라는 호흡공동체를 망치고 있으니까. 그것도 지구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기후를 유지해 생물종의 다양성과 풍요를 누리는 홀로세(Holocene)의 인간들이다. 그래서 대기가 망가진 산업혁명 시기 이후 지금의 시대를 인류세(Anthropocene)라고도 한다.
인간이 부리는 욕심에 숨쉬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지구의 허파인 밀림을 불태우는 먼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만 해도 최근 10여년 동안 미세먼지, 가습기 살균제, 신종플루, 메르스, 폭염이라는 강렬한 호흡 재난을 겪어 왔다. 이때 국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호흡안보’를 명목으로 국민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이었다. 국민이 가지 말아야 할 곳, 머물지 않아야 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언론은 각종 건강 담론을 전파, 유포하고 바이러스나 세균의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실어 날랐다. 공동체의 안전을 강조한 것 같았지만, 실은 각자도생의 필연성을 각인한 것이었다.
고도로 학습된 한국의 소비자들은 이제 보건복지부의 지시나 권고만을 취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누리집을 방문해 영어로 된 정보를 해석하고 각국의 과학적 지식을 비교·검토한 뒤 자신의 의료적 일상을 점검하며 나와 이웃의 일상 감시체제를 구축한다. 예컨대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는 첨예한 정치적, 과학적 논란거리가 됐다. 언제 어디서 쓰고 벗느냐를 두고 사회문화적으로 서로 다르게 구성된 과학적 지식이 충돌하며 갈등도 커졌다. 품귀현상을 빚은 마스크는 곧 권력이 됐다. 미국 부유층들은 먼저 백신을 맞겠다고 로비를 벌였다. 한국에서도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타미플루가 서울 강남구, 성남 분당구 등 이른바 ‘부자 동네’ 중심으로 집중 처방돼 지탄받은 적이 있었다.
숨은 공평하지 않다. ‘공기자본’을 가진 자본가와 그것이 없는 노동자는 숨의 질 자체가 다르다. <호흡공동체>(전치형, 김성은, 김희원, 강미량 지음)에서 과학자들은 “사회적 관계가 곧 공기관계”라고 밝힌다. 누구와 함께 어떤 공간에서 어떤 공기를 나눠 마시느냐는 문제야말로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공기재난 시대에 누군가는 방방마다 연결된 값비싼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널찍하면서도 쾌적한 공간을 점유하며 인맥과 재력을 총동원해 다량의 고품질 마스크를 확보한다. 반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극도로 제한된 콜센터 직원들은 옆 사람과 다닥다닥 붙어 숨 섞기를 피할 수조차 없다. 공기재난 시대 자기가 호흡할 맑고 상쾌한 ‘공기주머니’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곧 능력이 됐다고 저자들은 분석한다. 숨 막히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한국은 ‘각자도생의 공기사회’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참사 때 숨이 막혀 세상을 떠난 무고한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호흡 재난을 생각할 때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은 2011년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발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에서만 수천명 피해자가 발생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화학생활약품 재난이자 ‘단군 이래 최대 환경병’이었다. 가습기살균제병은 폐가 단단해지는 폐섬유화를 거쳐 호흡이 불가능해지고 사망까지 이르는 치명적 질환이다. 2011년 8월31일 정부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2023년 1월 말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7811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는 1802명에 달했다. 어린아이와 임신한 배우자를 위해 가습기를 설치했다가, 물통을 일일이 씻기 귀찮아 살균제를 썼다는 남편들의 후회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울부짖는 아버지들과 그들을 저지하는 공무원들의 몸싸움은 너무 비현실적이라 마치 한편의 부조리극 같았다. 편안하게 숨 쉬려고 산 제품이 목숨을 앗아가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숨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가장 사회적인 것이었다. 생존자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배상을 위해 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내놨지만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의 반대로 무산됐고, 최다 피해자를 낳은 옥시는 최근 피해구제를 위한 법정분담금 납부까지 거부했다.
사실 깊은 호흡은 인간을 구제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준(박해일)에게 서래(탕웨이)는 호흡을 안내한다. “내 숨소리를 들어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이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이 호흡을 통해 해준은 깊은 잠에 이른다. 과도한 스트레스나 분노를 다스릴 때 깊은 호흡이 효과적이라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숨을 길게 내쉬어 아랫배가 꺼지게 했다가, 다시 숨을 들이쉬면서 부풀어 오르게 하는 복식 호흡을 반복하면 심장박동은 느려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요한 호흡을 거듭하는 평온하고 여유로운 상태에서 자율신경계는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한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숨을 가다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숨에 대한 이야기는 종교에서도 누대에 걸쳐 전승돼 왔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이 진흙을 빚어 숨을 불어넣자 사람이 됐다고 설명한다. 불교에서 숨이 들고 남을 알아차리는 것은 무념무상으로 들어가는 수행의 기본이다. 자연의학계의 권위자들은 무너진 육체와 감정의 균형을 찾는 방법으로서 깊은 호흡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한다. 인간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숨쉬기라는 것이다.
숨쉬기는 잠자는 시간에도 쉼 없이 해야 하는 신체활동이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등반가나, 깊고 깊은 물속으로 잠수하는 해녀나 평지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세균부터 대왕고래까지 모든 생명체가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명활동이다. 이처럼 생존에 필수인 숨쉬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무게일까.
아기 때 아랫배를 불룩거리며 쉬던 숨은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가슴으로 올라온다. 목까지 올라온 가쁜 숨이 넘어가고 멎는 순간, 우리는 마침내 불가역적 시간을 맞게 된다. ‘목숨’이 다하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깨끗하고 완벽한 자기만의 ‘공기주머니’를 가졌더라도 홀로 숨 쉴 수는 없으며, 영원히 숨 쉬는 인간도 없다. 그것만큼은 평등하다. 이 점만이 위로가 된다.
이유진 |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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