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칼럼] 우리 아이들을 구하라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국제아동보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에서 교육 관련 강연 요청이 왔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을 구하라.’ 우리 아이들처럼 가여운 아이들이 또 어디에 있을까. 머릿속에선 최근 서울 강남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그 과정을 생중계한 어린 학생의 이미지가 지워지질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에글렌타인 젭은 참혹한 물질적 궁핍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을 만들었다지만, 지금 우리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강연 제목을 ‘우리 아이들을 구하라’로 정했다. 교육 강연이지만, 정작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구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은 어쩌면 교육 대상이라기보다는 구제 대상에 가깝다. 우리 아이들을 더 성숙한 인간으로 교육하기 전에, 먼저 이 불안과 고통에서 구해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빠져 있는 네개의 늪에 관해 말했다. 우리 아이들을 ‘불행’의 늪에서 행복의 대지로, ‘경쟁’의 늪에서 연대의 평원으로 건져내야 하고, ‘억압’의 늪에서 자유의 들판으로, ‘무사유’의 늪에서 사유의 세계로 구해내야 한다.
정말이지 이 땅의 어른들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가. 프랑스 <르몽드>는 한국 교육 실태를 취재한 뒤 우리 아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국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 관련 주요 기관에서 최근 몇년간 실시한 조사를 보면 <르몽드>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로 우리 아이들은 불행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고통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 고학년 열 중 아홉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대치동엔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했다. 때 이른 경쟁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에 몰려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초등학생들이 한주에 대여섯번을 편의점에서 컵라면, 삼각김밥, 햄버거로 혼밥을 하며 끼니를 때우는”(사걱세) 참혹한 현실이다. 학습노동의 인권 유린과 학대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고등학생은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주 50~80시간 학습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건강권, 행복추구권, 휴식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살인적인 경쟁교육이다. 여기서 ‘살인적’이라는 말은 결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해본 적이 있으며, 매년 청소년 자살자 300여명 중 절반에 가까운 수가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이런 참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은 어른들의 인권 불감증에도 책임이 있다. 어른들은 세시간 자면 붙고 네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3당4락’의 야만시대를 체험하고 내면화한 세대이기에 아이들의 과도한 학습노동과 살인적인 경쟁이 인권 유린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어른들의 무감각과 무지가 교육혁명을 가로막는 척박한 풍토를 만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대한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는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그 사회의 영혼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영혼’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그들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개성을 기르고 자유를 누리도록 무엇을 돕고 있는가. 그들이 세계의 고통과 억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연대하는 세계시민으로 자라도록 이끌고 있는가. 그들이 정의와 평등의 감수성을 갖도록 교육하고 있는가. 요컨대 우리는 아이들을 존엄한 인간, 성숙한 시민, 개성적인 자유인으로 기르고 있는가. 아니면 비천한 인간, 극단적 개인주의자, 천편일률적 기능인으로 키우고 있는가. 이제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경쟁교육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본다.(사걱세·유기홍 의원실 2022.7) 이제 국가가 나서서 경쟁교육을 끝장내고, 학대받고 유린당하는 우리 아이들을 이 지극한 고통에서 구해내야 한다. 불행한 아이가, 경쟁에 상처받은 아이가, 억압당한 아이가, 생각 없는 아이가 만들어갈 우리 사회의 미래가 두렵다. 아이들의 불행은 곧 사회의 예약된 불행이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구하면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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