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 ‘선방’ 자평했지만···거시·민생 지표 상당수 악화[윤석열 정부 1년]
“전 세계적 고물가 속에서 물가 상승률을 3%대로 낮추고 금융시장을 안정시켰다”정부가 내린 지난 1년간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다. 기획재정부는 “나름의 성과는 있으나 아쉬운 점도 있다”고 자평했다.
정부 출범 1년…주요 경제 지표 줄줄이 악화
정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나름 선방했다지만 지난 1년간 무역수지·경제성장률· 일자리 등 주요 경제 지표는 줄줄이 악화됐다.
수출이 급감하면서 기업 실적이 악화됐고, 경기 둔화와 자산시장이 침체하면서 세수도 급감했다. 1년전 80만개가 넘게 창출됐던 일자리는 40만개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악화된 것이 민생관련 경제지표다. 1년전과 같은 나라일까 싶을 정도로 지표가 달라졌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가구당 실질 소득은 마이너스 1.1%를 기록했다. 3분기(-2.8%)에 이어 2분기 연속 감소다.실질 소득 감소 폭은 4분기 기준 2016년(-2.3%) 이후 6년 만에 가장 컸다.
고금리는 가계 부담을 늘리고 있다. 비소비지출 중 이자비용은 1년 전에 견줘 28.9% 급증했다.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에 1인 가구를 포함시킨 2006년 이래 가장 크게 증가한 수치다.
고금리로 부채상환 부담이 늘면서 연체율도 오르고 있다. 가계신용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0.46%에서 지난 2월 0.64%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32%에서 0.47%까지 상승했다.
일자리수 증가는 기세가 꺾였다. 2022년 5월 당시 93만5000개가 늘었던 일자리는 지난 3월에는 46만9000개로 줄어들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일자리가 10만개 내외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된 고물가도 서민생활을 괴롭혔다. 5~6%대를 넘나들던 물가는 지난 4월 3.7%로 내려왔다고 통계청은 밝혔다.
하지만 외식(7.6%), 가공식품(7.9%) 등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기세가 여전하다. 특히 햄버거(17.1%), 국수(13.7%), 라면(12.3%), 피자(12.2%), 빵(11.3%), 커피(11.0%), 아이스크림(10.5%) 등은 가격상승률이 두자릿수다. 서울 시내에서는 김밥 한줄이 5000원, 삼계탕 한 그릇은 2만원에 육박한다.
거시경제 지표도좋지 못했다.만성 무역흑자국에서 무역적자국으로 바뀌면서 경상수지가 위태롭다. 올들어 1월(-42억1000만달러)와 2월(-5억2000만달러)은 경상수지가 적자로 출발한 상태다.
국내 외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줄줄이 내려 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1.7%에서 1.5%로 내렸고 한국은행은 기존 전망치(1.6%)의 하향조정을 예고했다. 기존 경제 전망치(1.6%)를 낮추지 않겠다던 정부도 이달 하반기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두고 하향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제 체력이 약화되면서 원화 약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2022년 5월 출범당시 1268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1320원대를 넘어섰다. 최근에는 달러 약세에도 원화가 강세로 돌아서지 않는 현상까지 관측되고 있다.
주식시장도 내내 약세였다. 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2510.06에 마감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5월9일 종가(2610.81)에 비해 3.86%하락했다.
정부가 내세운 경제 기조 ‘감세·건전재정·복지 확대’ 중 현실화된 정책은 감세 뿐이다.
세수 결손 우려 현실화…감세 기조는 유지
하지만 감세는 세수결손을 불러왔다.1∼3월 국세 수입은 87조1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조원 줄었다. 이렇다보니 세수 진도율은 21.7%로 2000년 이후 가장 낮다. 세수 진도율은 전체 예상 세수 가운데 실제로 걷힌 세금의 비율을 뜻한다.
1∼3월 세수는 교육세와 주세를 제외한 모든 세목에서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세입 증대를 이끌었던 법인세는 1년 전보다 6조8000억원 적게 걷혔다. 법인세는 국세의 약 25%를 차지하는 주요 세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2027년까지 연평균 12조9000억원, 총 64조4000억원의 세입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 경기가 살아나 세수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이 흔들린다. 월별 수출액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4월까지 7개월째 줄고 있다.
특히 중국 수출 감소가 눈에 띈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미일 중심외교로 대중관계가 악화되는데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에 큰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중국 기술력이 높아진 만큼 이전만큼 수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중국 경제가 살아난다해도 이전 수준의 성장세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민생 대응할 재정 여력 부족
출범 2년차에도 정부는 감세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세금을 낮추면 기업과 가계가 지출·투자를 늘려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낙수효과 성장론을 고수하고 있다.
‘건전재정’을 내세운 정부는 씀씀이를 줄이는 지출구조조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민생 대응을 위한 재정 운용의 폭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4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통해 현금성 지원사업이나 직접 일자리 축소, 공공부문 긴축 등을 통해 최소 10조원 이상의 지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코로나19 이후에 경제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시기에 너무 서둘러 건전재정을 추진했다”며 “최소 올해까지는 재정 건전성을 내세울 게 아니라 취약 계층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재정 여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출구조조정은 대기업 등 특정 업종과 기업에 몰아 준 과도한 지원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성인 교수(홍익대 경제학)는 “자유주의 경제는 정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하되 일부 대기업과 특정 분야에 지원은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부가 자유주의 경제를 표방한다면 반도체·수소차 같은 특정 기업, 분야에 대한 지원부터 구조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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