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단 판 키워준 갭투자 … 임대차 3법이 불질렀다
2020년 임대차 3법 시행후
서울 빌라 전세가격 14% 급등
전세대출도 172조 눈덩이
매매가 폭등 악순환 부추겨
◆ 표류하는 정책현안 ◆
"지난 정부 때 무리하게 밀어붙인 임대차3법이 전세사기단의 판을 깔아줬다."(엄태영 국민의힘 의원)
"임대차3법은 계약갱신요구권이 핵심이라 (전세사기 사태와) 전혀 상관없다."(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셋값을 폭등시킨 것은 분명히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임대차3법이 계기가 됐다."(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달 28일 전세사기 특별법안을 상정하고 심사가 시작되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선 여야 의원 간 논쟁이 오갔다. 최근 전세사기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문재인 정부 시기 전세가격의 급격한 폭등에 있고, 이를 부추긴 것은 임대차3법(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라는 현 정부와 국민의힘 측 주장에 야당 의원들이 '정치 공세'라며 반박한 것이다. 전세사기 특별법을 둘러싼 정부 여당과 야당 간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당분간 전세사기 피해자가 양산된 원인을 놓고 책임 공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의 씨앗은 지난 수년간 폭등했던 전세가격이 최근 급격히 꺼지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는 데 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서민 주거 안정'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확대된 전세대출과 2020년 도입된 임대차법 영향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전세가격을 단기간에 밀어올렸다. 이에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격차가 좁아지자 일부 빌라·다세대주택에 무자본 갭 투기가 성행했다. 하지만 최근 빌라 집값과 전세가격이 함께 떨어지면서 속수무책인 상황으로 돌변한 것이다.
전세가격은 2020년 이전부터 서서히 올랐지만 임대차3법이 시행된 그해 7월 이후 급상승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이전 1년간 전국 연립주택의 평균 전세가격은 1억2976만원에서 1억3236만원으로 2.1%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후 1년인 2021년 7월엔 1억4760만원으로 연간 11.5%가 뛰었다. 이 기간 서울의 평균 연립주택 전세가격은 2억1641만원에서 2억2726만원으로 13.5% 급등했다. 임대차3법 시행 전 1년간 2.9% 오른 것에 비하면 5배 가까운 상승폭이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임대차2법인 계약갱신청구권과 5%룰(전월세상한제) 때문에 전세가격이 급등했고, 2년이 지난 후 가격이 급락하면서 지금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로 인해 집주인들이 전세 계약을 꺼리게 돼 월세로 전환하거나 집주인들이 직접 들어와 살면서 전세 매물이 부족해졌고, 전세가격이 폭등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의 전세보증금 대란이 반드시 임대차3법만의 영향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의견이 엇갈린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각종 부동산 규제에 따른 신축 공급 부족, 저금리, 유동성 증가 같은 환경 속에서 추격 매수심리가 작용해 집값이 급등한 것이 전세가를 끌어올린 원인"이라며 "지금의 전세보증금 사태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보는 게 맞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지속 확대된 전세대출과 임대차법 도입, 새 주택 공급 부족 등이 맞물려 벌어진 정책 실패라는 시각이 많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2008년 도입된 전세대출은 이후 정부마다 규모가 확대됐다. 전세대출이 용이해지면서 2012년 23조원 규모에 불과했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6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해 지난해엔 172조원(10월 기준)까지 늘어났다.
[연규욱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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