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못주는 집주인 "대출 완화를"… 정부는 뒷짐만
전세사기 공포에 정책불신
멀쩡한 세입자도 "나가겠다"
곳곳서 보증금 못돌려줄 우려
"일시적으로 DSR 규제 풀어
임대인·임차인 숨통 터줘야"
◆ 표류하는 정책현안 ◆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전세시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지만 정부는 선제적인 전세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사실상 시장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특히 이달부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높아지면서 등록 임대사업자들을 중심으로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빌라왕'이 촉발한 수도권 전세사기 대란에도 '늑장 대응'했다는 지적을 받은 정부가 이번에도 선제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층 실수요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확산되고 있어 '발등의 불'부터 끌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역전세 우려로 인한 '빌라 전세 런' 사태까지 해결하려면 장·단기 대책을 동시에 '투 트랙'으로 세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무엇보다 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담보대출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만큼은 한시적으로 완화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전세보증금 반환 용도인 주택담보대출에도 DSR 규제가 적용돼 집주인들이 활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5월에 시작된 전세보증보험 한도 축소 유예 등도 거론된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하반기에 역전세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일시적으로나마 대출 규제를 완화하면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 대책을 활용한 후에는 전세사기의 빌미를 제공한 전세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전세는 그동안 임차인에게는 저렴한 주거를, 임대인에게는 무이자 레버리지를 제공하면서 공생 구조를 만들었는데 이제 그 구조가 깨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해결책으로 떠오른 것이 전세보증금 에스크로 계좌 도입이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전세금을 바로 집주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HUG 등에 입금하면 전세금의 70%만 집주인에게 주고 나머지 30%는 HUG가 보관하는 방식이다. 빌라 전셋값을 공시가격이나 경매 낙찰가격의 일정 비율 아래로 제한해 역전세와 사기를 막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밖에 선순위 채권이 있어 사고 위험이 높은 빌라에 대해서는 월세 계약만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들 정책을 섣불리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2016년 우리은행, 퍼스트어메리칸권원보험, 직방과 함께 에스크로 상품을 출시했지만 거래를 단 한 건도 만들지 못했다. 계좌를 운영하는 은행도 수익성이 없었고, 이자가 낮아 집주인들이 제도를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보증금상한제도 어느 정도를 적정 수준이라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붙을 위험이 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에스크로 등을 활성화하려면 결국 집주인에게 강제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전세를 놓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주택 임대차 시장에 또 다른 역풍을 불러올 수 있어 도입하려면 충분한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장기적인 대책으로 검토할 만한 방안은 무분별하게 확대된 전세대출 한도 축소와 월세 활용 시 인센티브 강화 정도다. 전세 거래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는 규제보다는 시장에 만연한 '거품'을 빼고 월세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저신용자들에게 무분별한 대출을 해주다 보면 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주택 가격에 거품이 생길 수 있다"며 "점진적으로 주택 보증 비율을 낮추고 전세대출에 DSR 적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동우 부동산·도시계획전문기자 /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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