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직무급 도입 제대로 알고 하자
기업에서 임금을 결정하는 두 축은 임금수준과 임금체계다. 임금수준은 일하는 자의 노동의 대가가 어느 정도라야 하는가의 '정당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생계비, 노동생산성, 기업의 지불능력 그리고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임금수준 등이 그 결정요소다. 임금체계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본급은 조직에 대한 공헌도를 근속연수로 표현한 호봉급, 직급을 기준으로 한 직급급, 직무수행능력을 기준으로 한 직능급 등이 근간을 이루고 이들의 혼합형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성과급과 각종 수당을 추가하고 있다.
근속연수, 직급, 직무수행능력, 성과, 직무 등 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하는 것이 옳고 어떤 기준으로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없다. 조직 내에서 공정성에 대한 합의만 있으면 된다. 일본의 경우 연공 위주의 임금이 당시 장기근속과 종신고용제라는 사회적 특성에 합당한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성과나 직무가 임금의 기본인 것도 그 사회에 합당한 것이었다.
정부는 직무급 도입을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선두로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한다. 임금이 사람 중심(연공, 나이 등)이 아닌 직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필자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직무급 도입을 위해 많은 연구와 컨설팅을 해보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직무급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하고 있는 일'을 기준으로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동일 직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연공이나 학력, 경력 등의 인적 요소에 관계없이 동일 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직무급 실시를 위해서는 모든 직무의 가치가 결정되어야 하고 직무의 상대적 가치에 따라 직무등급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무분석과 직무평가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선행되고 이에 따라 직무등급의 근거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 직무분석이 가능하도록 직무가 명확히 정리되고 체계화되어 있어야 한다. 직무의 상대적 가치가 결정되면 직무등급을 분류할 수 있고 직무등급에 따라 임금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결정하고, 이를 기본급으로 하여 성과에 따른 임금 차등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같은 조직에서 직무급이 일률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직무의 특성상 직무급을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 또 업종이나 조직 특성상 직무급보다 다른 임금체계가 더 합당할 수도 있다.
직무급 도입 실시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야 한다. 회사나 공공기관 내 직무분석과 직무평가만 해도 몇 년이 걸릴 터인데 내년에 도입 실시를 목표로 한 조직이 수백 개에 달한다니 참으로 걱정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선진국의 합리적인 인사제도를 도입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그렇게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그런 좋은 제도를 도입·실시하는 데 필요한 사전 여건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는 우리나라 임금체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직무급 도입에 대한 인센티브를 운운하면서 정책적으로 서둘러 도입하려다 시행착오를 범하지 말고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제대로 된 직무급이 정착되기 바란다. 직무급 전문가들이 많이 등장하겠지만, 진정한 전문가들의 성실하고 진실하고 책임질 수 있는 도움을 바란다. 직무급 도입이 또 다른 임금 통제 수단이나 자칭 전문가들의 일거리나 되어서는 안 된다.
[박오수 전 한국경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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