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1년 보건의료] 코로나19 일상회복은 성과…간호법 파동에 개혁 ‘올스톱’
중증·필수의료 중심의 보장성 강화
의사정원 확대 비대면 진료 등 현안 ‘다사다난’
“구체적 실행계획 없어 신뢰 떨어져”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보건의료 분야의 해묵은 과제인 건보개혁·필수의료확충·비대면진료·의사정원 확대 등을 개혁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코로나19 극복을 제외한 개혁 과제들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 과제는 의지가 있다고 단칼에 해결될 사안이 아닌 게 문제였다. 보건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개혁의 시동은 걸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에도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하며 추진한 법안들은 번번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혔고, 간호법 등 논란이 되는 법안들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혼란이 커졌다.
코로나19 극복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곧바로 착수한 과제다.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피해 회복과 경영 안정을 위해 22조6280억원의 손실보전금을 373만개 업체에 지급했다. 지난해 실외 마스크 착용의무를 해제한 데 이어 지난 2월 실내 착용 의무를 해제했다.
코로나19 중증화율은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2.1%에서 지난해 10월~올해 3월 기준 0.09%까지 떨어졌다. 보건복지부는 3월 ‘코로나 위기 단계 조정 로드맵’을 발표하며 엔데믹(풍토병화)을 준비했다. 감염병 관리 중심으로 바꿨던 의료 대응체계도 일반 대응체계로 전환해 나갔다.
이달 초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 국제 공중 보건 비상사태(PEIC)를 해제하면서, 일상회복은 더욱더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 8일 열린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에서 ‘확진자 7일 격리 의무’를 권고(의무해제)’로 전환하는 의견이 제시된 데 따라, 9일 위기평가회의를 열었고, 오는 11일 최종 방침을 확정해 발표한다.
윤석열 정부는 보건 정책에서는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되돌리고 중증·필수의료 중심 보장성 강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향성을 잡았다. 문재인 케어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인 것은 맞지만, 반대로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등 과잉 진료로 건보 재정 소진을 가속화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공청회에 이어, 지난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MRI와 초음파의 급여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두통이 있으면 다른 질환 여부와 상관없이 뇌·뇌혈관 MRI에 건보를 적용하던 것을 앞으로는 신경학적 이상 소견이 있어야 건보 적용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의학회가 참여하는 급여기준개선협의체 논의를 거쳐 일선 병원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도 시행됐던 상복부 초음파도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건보 적용을 하도록 개선했다. 복지부는 올해 안에 MRI, 초음파 검사에 대한 건보 적용 기준을 확정하고, 고시를 개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외국인에 대한 건보 적용 기준도 강화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국내 거주 외국인의 해외에 있는 가족이 한국에 입국하면 곧바로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중증·필수의료 지원 대책도 발표했다. 복지부는 지난 3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현장·이송·병원 단계에서의 대응을 효율화하기로 했다. 전국 어디서든 1시간 안에 중증 응급환자가 진료받을 수 있도록 중증응급의료센터를 추가 확충하기로 하고, 중증응급질환의 경우 지역별·병원 간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의료 공백을 막는다는 그림이다.
대형병원 응급실이 중증 환자를 중점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응급하지 않은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안내하거나 높은 본인 부담금을 사전에 안내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 밖에 필수의료를 다루는 의료 인력을 늘리기 위해, 의사 간호사 근무 여건 개선,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제도, 학제 개편 등도 고민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건⋅의료계의 반응은 차갑다. 개혁하겠다는 계획은 거창하게 발표했지만, 정확한 이행 단계 별 시행 시기가 명확하지 않고, 관련 예산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이런 개혁 사안은 국민 여론은 물론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여러 직능단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어 빠르게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를 정식으로 제도화하는 작업도 지지부진하다. 비대면진료 업체는 전면 허용을, 의사 약사 등 의료계에서는 재진부터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히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부는 시범사업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초안조차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인면허박탈법(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보건의료계 내부 갈등은 극심해졌다. 의대정원 확대 문제도 간호법 통과와 동시에 중단된 상태다. 여기 맞물려 의사과학자 육성도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 중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 부분에 의사과학자 양성을 포함시켰다. 의사과학자 양성에 한 축을 담당하는 카이스트 포스텍 의학전문대학원 문제가 의대 정원 확대 문제와 맞물리면서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것이다. 의사과학자는 신약 개발부터 헬스케어 산업 육성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필수의료 확충 계획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업들이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며 “정부의 개혁 집행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남은 기간 의사 정원을 빠르게 늘리고, 지역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서 실행해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다면 다음 정부가 오기 전에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는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대로라면 이번 정부에서 국민건강보험의 누적적립금 10조원을 다 소진할 수 있다”며 “기존 의료시스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의료비 낭비를 막고,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을 요청할 수 있도록 실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도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건강보험료율을 2022년 현재 소득 대비 6.99%에서 24% 내외 수준으로 인상해야 건보 수지 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보다 건보개혁이 훨씬 더 시급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금개혁과 건보개혁 모두 법안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정부가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 어렵다”며 “윤석열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인구 구조 변화에 적응할 방안을 빨리 찾아서 실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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