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근무'에 대한 국민 오해 … 언론이 제 역할 못한 것
◆ 매경 독자위원회 ◆
매일경제 독자위원회(위원장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가 지난달 27일 정례회의를 열고 3~4월 보도된 매일경제 기사와 매경이코노미, 매경럭스멘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봉욱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주부 황혜영 씨가 참석했다. 조성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대학생 강희원 씨는 서면으로 의견을 보냈다.
SVB발 은행 위기
실리콘밸리뱅크(SVB), 크레디트스위스 등 은행 위기가 과거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달리 금융위기로 확대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분석해주는 기사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미국 정부가 예금을 전액 보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동남아시아 등 금융 후발국이 아닌 미국과 유럽 등에서 먼저 나타난 이유 등에 대해 보도가 이뤄졌으면 은행 위기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가 높아졌을 것이다. 결국 독자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의 은행들에 맡긴 자신의 예금이 안전한가인데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한국의 은행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 기사가 없었다.
SM 경영권 분쟁
오르내리는 주가 상황과 더불어 경영권 분쟁이 K팝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심층 분석한 점이 유익했다. ''쩐의 전쟁' 끝내고…카카오·하이브·SM 'K팝 3각 동맹' 시동'(3월 13일자 A1·6면 보도)에서 '팬덤 플랫폼'이란 개념을 소개하며 K팝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언급한 것은 독자들이 통찰력 있는 시각을 갖추는 것을 도왔다. 얼라인이라는 행동주의 펀드에 의해 촉발된 사건인 만큼 행동주의 펀드의 순기능과 역기능, 유사한 국내외 사례 등을 다루는 기사가 보도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 개선
한일관계 개선의 긍정적 측면만 강조돼 균형 있는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이슈인 만큼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을 모두 소개하면 독자가 심도 있는 의견을 가질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 정부 예산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던 것 등을 제시했으면 독자들이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데 참고가 됐을 것이다. 추후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이번 전향적 조치들에 상응하는 결단을 내리는지 후속 보도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동은이 위로하는 일본인 스즈메 응원하는 한국인'(4월 15일자 A1·4면 보도) 등 한일 문화 교류 기사는 MZ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였다.
제조강국, G5 도약의 길
반도체 등 한국 제조업이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나온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2000년대 초 매일경제가 '지식'이라는 화두를 강조해 국가적 트렌드를 이끌었던 것처럼 제조강국 기획도 긴 호흡에서 지속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독일은 오랜 기간 선진국 자리를 유지하면서도 산업 경쟁력이 나빠지지 않았는데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왜 떨어지고 있는지, 미래 한국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등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개혁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노동 구조를 선제적으로 제시했다. '저출산發 성장률 하락…노동·교육개혁에서 돌파구 찾아야'(4월 11일 A1·12면 보도)에서 소개한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인터뷰는 독자들에게 노동시간 유연화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美빅테크 뛰는데…벤처정신 사라진 판교, 노조 깃발 펄럭'(4월 11일 A1·3면 보도)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경각심을 줬다. MZ세대가 정부 개혁안을 비판하는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보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정부 개혁안이 '주 69시간 근무'만 부각돼 국민 설득에 실패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언론 보도는 정책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국민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언론이 지속적으로 환기해야 한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이 극심하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언론이 계속 지적해야 한다.
공급망 위기
미·중 패권경쟁 시대에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기사가 없어 아쉬웠다. 미국과 협력하는 노선을 계속 고수해야 하는지, 독일·프랑스가 중국과 가깝게 지내는 것처럼 중국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실리를 취해야 하는지 분석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미·중 분쟁이 단기적으로 한국 기업에 피해를 끼치지만 중장기적으로도 악영향으로 작용할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지 분석하는 기사도 요구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의 핵심원자재법 등 국제 공급망을 뒤흔드는 규제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분석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서구 세계는 정치적·경제적 해결 방법이 통하지 않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용산 대통령실에 지난해 국제법무비서관 자리가 처음 신설되기도 했다. 이들 규제가 미국·유럽의 국내법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국제법과 충돌하지 않는지, 소송 등 법적 대응이 가능한지 법률 전문가 의견과 함께 보도했으면 좋겠다.
배터리 산업 동향
배터리 산업은 기업 간 거래(B2B) 산업인 만큼 일반 독자가 동향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매일경제가 산업 동향을 주식시장과 연결시켜 알기 쉽게 보도했다. '실적 보면 양극재株 오를 만 "해외 동종기업보다 18배 고평가"'(4월 3일 A1·4면 보도)는 2차전지 소재 주식에 투자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됐다. '2차전지社 73% "中투자 미루겠다"'(4월 15일 A1·3면 보도)는 2차전지 소부장 기업 81개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포그래픽으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가치 있는 정보를 독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했다.
뉴욕 글로벌금융리더포럼
'지금 위기 아니다…인프라·AI 투자를'(4월 20일 A1·5면 보도)의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대담 기사는 은행 위기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인사이트를 키웠다. 특히 경제위기 시기의 투자 원칙을 제시해 투자자의 불안을 해소했다. 앞으로도 국제적 전문가를 통해 비전을 제시하는 기획이 많이 보도됐으면 좋겠다. '월가 금융인들 "한국, 연기금·기업금융 강점 살려야"'(4월 19일 A5면 보도)는 한국 금융산업의 성장 조건을 다뤘지만 전문가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친 점은 아쉬웠다. 정부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심층 보도했으면 경제신문으로서 해당 이슈를 선도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타
시간이 부족한 독자들을 위해 1면이나 2면 왼쪽에 지면 주요 기사들을 요약해 제시하는 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매일경제만 봐도 다른 신문을 찾아볼 필요를 못 느끼게 다른 일간지에서 보도한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면도 있었으면 좋겠다.
매일경제 지면은 영양가 있는 기사로 차 있고 '키 150㎝ 왜소증인 이 남성…성매매 업소에 11개월이나 머문 사연'(4월 24일 온라인 보도)처럼 수준 높은 온라인 기사가 많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온라인 플랫폼에 이런 좋은 기사들이 자주 노출돼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플랫폼 메인에 노출되는 기사들은 선정적 기사, 영양가 없는 킬링타임용 기사가 대부분인데 이는 독자들에게 도움도 되지 않고 매일경제의 신뢰도를 훼손한다.
매경이코노미&매경럭스멘
매경이코노미는 'KT잔혹사의 실체'(4월 12~18일)에서 KT의 경영 공백 사태를 조명하며 소유분산기업의 기업 지배구조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올해의 금융 CEO'(3월 15~21일)는 주 독자층인 기업 경영진에게 스스로 경영 방향을 되짚어보고 우수 경영 사례를 벤치마킹할 기회를 제공했다. '댕냥이 상전시대'(3월 1~7일), '부활하는 J-컬처'(3월 8~14일)는 MZ세대가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주제를 다뤘다.
매경럭스멘은 '한국 미래 이끌 10대 기술'(3월호)에서 기술별로 업계 현황과 관계자의 의견을 풀어 신산업 성장을 위한 전략 수립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챗GPT의 경제학'(4월호)은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 현황과 산업 전망을 다각도로 설명해 '고급 경제 정보와 콘텐츠의 공유'라는 럭스멘의 취지를 살렸다. 특히 챗GPT 활용의 명암을 균형 있게 제시한 점은 독자가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는 데 도움을 줬다.
[김형주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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