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생이 본 간호법···“밥그릇 싸움 아닌 ‘1인당 환자 13명’ 현실 봐야”
“70년 전 제정된 현행 의료법은 급변하는 보건의료 환경과 다양한 돌봄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간호대학에 모인 재학생 170여 명과 교수, 교직원들은 ‘간호법 지지 선언 및 대통령 거부권 반대’ 성명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간호법 제정은 국민의 건강복지를 위한 불가피한 요소”라고 했다.
성명문은 간호대학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준비했다. 경향신문은 성명문 낭독 행사에 참여한 4학년 재학생 김효진·서예진·선은아씨를 만나 예비 간호사들이 바라보는 간호법 논란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간호사가 환자에게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간호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간호법 제정안 제1조는 간호사의 활동영역에 의료기관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포함한다. 이들은 예비 간호사로서 실습을 나갔을 때 병원 밖, 지역사회 내 간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선씨는 지난 4월 경기 양평의 한 보건진료소로 지역사회 실습을 다녀왔다. 병원도, 의료진도 없는 그곳엔 보건진료소장 홀로 드레싱부터 치매 환자의 가정방문까지 맡고 있었다. 선씨는 “앞으로 사회가 더 고령화된다고 하는데 지역에 있는 이들을 (보건진료소장) 한 사람이 돌보는 것이 맞는지, 돌볼 수는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서씨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1년 넘게 실습하며 환자들의 ‘퇴원 이후의 삶’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코로 들어가는 튜브인 비위관을 통해서만 음식을 섭취하거나 수시로 기계를 통해 가래를 빼야 하는 환자들을 본 것이 계기였다. 서씨는 “이분들이 병원 안에선 간호사의 보살핌을 받지만 계속 병원에 있을 순 없다”면서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하실 수 있을지, 방문 간호 제도로 간호할 순 없는지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역사회’ 문구를 두고 ‘간호사들이 개원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간호법을 둘러싼 논란은 간호사와 의사 간 직역 갈등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학생들은 간호사들이 간호법을 주장하는 이유보다 직역간 논쟁으로만 다뤄지는 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시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간호사가 겪는 의료현장의 부당한 처우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된 법안 논의가 ‘밥그릇 싸움’으로만 다뤄져 진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김씨는 “거짓정보로 인해 오해가 너무 많이 쌓인 것 같다. 의사나 간호사나 엄연히 할 수 있는 업무가 다르다”면서 “중요한 것은 간호사들의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비 간호사인 이들은 선배 간호사들의 현실이 팍팍하다고 느낀다. 간호사 한 사람이 돌봐야 하는 환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배 간호사 한 명이 환자 13명에게 주사를 놓고, 야간 업무가 끝나고도 퇴근하는 사람이 없어 퇴근버스가 ‘유령버스’로 불리는 상황을 보고 들었다. 김씨는 “실습하며 현실을 마주하면 ‘내가 이 일을 정말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작아진다”고 했다. 서씨는 “결국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크면 환자가 제대로 된 간호를 받지 못한다’는 인과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규 간호사 절반이 1년 내 이직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이들은 환자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느낀 보람 때문에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김씨는 “모두의 건강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입학했지만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고 다른 진로를 준비하는 동료들을 여럿 봤다”면서 “환경이 나아지면 떠나려는 간호사들도 함께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법의 조속한 공포를 촉구했다. 김영경 간호협회장과 지부 대표자 등 5명은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중구 간호협회 회관 앞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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