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후퇴한 집회·시위의 자유···금지사유 대세마저 변했다[윤석열 정부 1년]

이유진 기자 2023. 5. 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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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부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이태원로와 서빙고로 일대 교통량이 많아질 경우 경찰이 집회 및 시위를 제한 또는 금지할 수 있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하루 앞둔 9일 대통령실 인근 도로와 인도의 모습. 이준헌 기자

“경찰은 앞으로도 집회의 자유는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공정하게 법 집행을 해나갈 방침이다.”

지난 2월28일 건설노조의 도심 집회, 3월25일 민주노총 등 주말 집회, 5월1일 양대노총의 노동절 도심 집회 등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경찰이 내놓은 집회 대응방안 자료는 매번 이렇게 끝맺음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되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는 엄격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 자유’의 예외 지역이 있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이다. ‘용산 시대’가 개막하자 경찰은 집시법 11조에 명시된 ‘대통령 관저’ 표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연이어 금지했다. 대통령실 인근 서빙고로 등을 ‘주요 도로’로 지정하는 내용의 집시법 제12조 시행령 개정안도 입법예고 했다. ‘주요 도로’로 지정되면 관할 경찰서장이 ‘교통 소통’을 위해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실 앞 집회를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용산서 집회 금지 1등 사유 ‘대통령 관저’→‘교통 소통’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인권단체연대체 공권력감시대응팀이 서울 관내 경찰서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 등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에는 2022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3919건의 집회 신고가 접수됐다. 용산서는 이 중 173건(4.41%)에 대해 집회 금지 통고를 했다. 남대문경찰서 1.86%, 종로경찰서 1.69%, 서대문서 1.60%, 영등포경찰서 0.46%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용산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3주가 지난 2022년 4월10일, 그해 처음으로 집회에 금지 통고 결정을 내렸다. 집시법 11조3항 ‘대통령 관저’ 인근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사유로 들었다.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에 포함되므로 인근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약 한 달 반 동안 집시법 11조를 근거로 한 집회 금지 통고는 19차례 반복됐다.

기조가 변한 건 그해 6월부터다. 법원이 집회 금지 집행정지 사건에서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은 별개이고,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집회는 금지할 수 없다며 5월에만 세 차례 시민단체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6월부터 집시법 12조(교통 소통)를 근거로 한 집회 금지 통고가 급증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2023년 1월까지 용산서의 집회 금지 사유는 집시법 12조가 132건으로 가장 많았고, 8조(장소 경합·사생활 평온) 42건, 11조(금지장소) 31건 순이었다.

“안 되면 되게 하라”···‘시행령 개정 꼼수’까지 꺼내든 경찰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지난해 서울 관내 집회 금지 통고 사유 월별 통계. 천준호 의원실 제공

윤석열 정부 들어 집시법 12조가 서울 시내 집회 금지의 주요 근거로 활용된 것은 경찰청이 자체 집계한 통계에도 나타난다. 9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관내에서 집시법 12조에 따른 집회 금지는 지난해 1월 1건, 2~5월 0건에 불과했다. 그러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인 6월 30건으로 급증했다. 이후 7월 6건, 8월 8건, 9월 27건, 10월 14건, 11월 46건, 12월 39건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 결과 지난해 집회 금지 사유 1위는 1~5월 5조(공공질서 위협, 44건)에서 6~12월 12조(170건)로 바뀌었다.

경찰, 패소에도 무한소송···숨 쉴 곳 없는 집회·시위의 자유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4월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 반대 시민 서명 및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집회와 관련한 경찰의 소송전도 진행형이다. 경찰은 집회 금지 통고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패소하자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며 항소해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경찰이 집회금지를 통고하면 시민단체가 집행정지를 법원에 신청하고, 행정법원이 이를 인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집회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사법화되면서 힘 없고 절박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는 권력기관을 성역화하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며 “전 정부에서 경찰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집회·시위 권리 보장에 대한 논의가 진전됐으나, 지난 1년 사이 이러한 논의는 사라졌고 과거로 빠르게 회귀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의 의지도 있겠지만 결국은 권력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윤 대통령은 매번 자유를 외치지만, 용산 대통령실 앞 그 어디에도 자유는 없는 듯하다”고 했다.


☞ [단독]‘용산에 의한, 용산을 위한’ 집시법 시행령 개정···경찰 자체 기준에도 안 맞았다[윤석열 정부 1년]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5091631001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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