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경중’서 ‘안미경미’로 재편···중국 대체국 못 찾아 [윤석열 정부 1년]
윤석열 정부 1년은 경제 분야도 외교·안보와 마찬가지로 중국과는 멀어지며 미국과의 협력은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지난 수십년을 이어온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에서 ‘안미경미’(안보는 미국, 경제는 미국)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대중국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최대 수출시장도 약 20년 만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 포럼 축사에서 “이번 방미를 계기로 양국이 명실상부한 첨단 기술 동맹임을 재확인했다”며 “양국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돼 ‘프렌드 쇼어링’ (우방국 간 공급망)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실제 한국 기업들은 앞다퉈 미국에 투자하며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입해 미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등에 150억 달러(약 19조9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SDI와 SK온, LG에너지솔루션도 각각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같은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 이면에는 자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이 있다. 미국은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을 통해 주요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유치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한국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미국과의 경제 협력은 더욱 밀착됐다.
대미 수출도 빠르게 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해 지난해 14.5% 증가한 미국 수출은 올해에도 4월까지 360억4000만 달러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46억6500만 달러)를 제치고 2위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을 지켜온 중국과의 격차도 19년 만에 가장 많이 좁혀졌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2003년 이후 처음으로 최대 수출국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폭도 전년 대비 23.3% 늘어난 데 이어 올해에는 주요국 중 가장 많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 중이다.
반면, 그동안 한국 수출 성장세를 이끌었던 대중 수출은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대중 수출액은 1560억 달러로 1년 전(1630억달러)에 비해 감소했다. 지난해 중국의 총 수입액이 늘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에 중국 수입시장 내 한국의 점유율도 2001년 이후 최저치인 7%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져 대중 수출 비중은 더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 수출이 축소된 것을 넘어 교역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022년만 하더라도 243억 달러에 달했던 대중 무역수지 흑자 폭은 지난해 12억 달러로 급감했다. 무역수지 흑자에 가장 크게 기여해온 중국이 이제는 무역적자를 부추기는 국가로 바뀌었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기술 수준이 높았던 산업군 무역수지가 2018년 384억 달러에서 2022년 129억 달러로 줄어든 점이 눈에 띈다. 석유화학, 정밀화학 등 분야 무역수지도 2018년 262억 달러에서 2022년 39억 달러로 줄어들며 무역수지 적자를 부추겼다. 이는 단기적으로 반도체 경기가 부진한 것을 넘어 미·중 갈등 격화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로 인한 자급률이 올랐기 때문이다.
대중 수출 부진이 길어지면서 중국 수출 의존도가 각각 40%, 38%에 달하는 반도체와 화학업종 기업의 피해도 커졌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95.1%, 58.1% 줄어들었고 지난해부터 부진을 겪었던 LG화학 등 화학기업도 여전히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최대 수출시장이 미국으로 바뀌고 있지만 전체 무역적자와 수출 하락세를 끊기에는 역부족이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연속 감소했고, 무역적자는 지난해 3월부터 14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탈중국을 하려면 새로운 대체 시장 발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간 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경제도 효율보다 안보를 중시하면서 자연스레 중국과의 무역 관계도 느슨해지고 있다”며 “인도나 아세안 시장처럼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는 것이 결국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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