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시간만 1975분…오늘 안에 르세라핌 옷 살 수 있을까
현재 대기 395팀, 예상 대기시간 1975분. 지난달 26일 오후 3시께 서울 성수동 르세라핌 팝업스토어 입장 대기 등록기 화면은 믿기 힘든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오늘 안에 들어갈 순 있을까. 르세라핌이 대세 걸그룹이라지만 오픈 첫날부터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몰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손에 뭔가를 든 남자가 팝업스토어에서 막 나왔다. 30대 초반 정아무개씨는 이날 오전 10시10분에 와서 4시간 만인 오후 2시10분에 들어갔다고 했다. 웬만한 굿즈는 다 팔리고 없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 사진이 바뀌는 렌티큘러 포토카드와 르세라핌 케이크를 샀단다. 그는 “김채원과 사쿠라가 르세라핌 이전 아이즈원으로 활동할 때부터 팬이어서 왔다”며 “음악과 영상으로만 즐기다 오프라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어 다채롭고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입장을 기다리던 초등학교 6학년 임정윤양은 “르세라핌 데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팬이 됐다”며 “경기도 의왕에서 엄마와 함께 왔는데 오늘 못 들어가면 다음에 또 올 것”이라고 했다.
팝업스토어는 짧은 기간 임시로 여는 매장이다. 유통업계에서 마케팅의 하나로 운영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케이(K)팝을 비롯해 애니메이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문화 콘텐츠 업계에서도 팝업스토어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케이팝 가수에게 팝업스토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돼버렸다. 지난해부터 뉴진스, 블랙핑크, 에스파 등이 잇따라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7일까지 12일간 운영한 르세라핌 팝업스토어에는 1만6000여명이 다녀갔다. 하루 평균 1330여명 꼴이다. 르세라핌 첫 정규 앨범 <언포기븐> 발매를 기념해 마련한 이번 팝업스토어에선 여느 굿즈뿐 아니라 멤버들이 착용한 스포츠웨어와 액세서리, 각 멤버들의 취향을 반영한 케이크 5종까지 선보였다. 특히 옷의 인기가 높아 매일 들어오는 족족 일찌감치 매진됐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한 하이브와 쏘스뮤직 쪽은 “르세라핌 공식 상품의 패션 브랜드로서 확장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이브는 10일부터 자사 온라인 쇼핑 플랫폼 ‘위버스샵’을 통해 이들 상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팝업스토어는 판매 목적도 있지만 홍보 목적이 더 크다. 지난달 8일부터 지난 7일까지 4주간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선 독특한 식료품점이 문을 열었다. 그룹 엔시티(NCT) 멤버들을 귀여운 캐릭터로 만든 ‘엔시티 꼬마즈’ 팝업스토어다. 알록달록한 식료품점 콘셉트로 꾸민 이곳에선 굿즈도 팔지만 팬들이 자유롭게 구경하고 즐기는 놀이터 성격이 더 강하다. 지난달 26일 찾은 이곳에선 기념 사진을 찍는 외국 팬들도 많았다. 이스라엘에서 온 젊은 남녀는 “케이팝을 좋아해 휴가 내고 한국에 왔다”며 “엔시티 팬으로서 여기 오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팬들이 찍은 사진은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퍼져나가 자연스럽게 홍보된다. 이곳을 운영한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도 풀리고 해서 엔시티 꼬마즈 캐릭터도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팝업스토어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팬층이 탄탄한 일본 애니메이션 팝업스토어도 인기다. 지난 1월 말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문을 연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에는 아침 일찍부터 와서 ‘오픈런’을 하는 현상이 매일 벌어졌다. 9일 현재 누적 관객 460만명을 넘긴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인기에 힘입어 팬들이 북산고 유니폼 등 관련 상품을 사러 대거 몰린 것이다. 이날 현재 530만 관객을 넘기며 일본 영화 흥행 기록을 연일 새로 쓰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도 오는 26일부터 8월까지 현대백화점 신촌·판교·대구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연다.
새로운 콘텐츠를 알려야 하는 오티티 업계에서도 팝업스토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과거 넷플릭스가 신규 콘텐츠를 홍보하고 이용자들을 늘리기 위해 <킹덤> <오징어 게임> 등의 팝업스토어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었는데, 이제는 국내 오티티 업체도 팝업스토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웨이브는 지난달 22~30일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 <피의 게임 2>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 인기 예능 시리즈의 두번째 시즌 공개를 맞아 이를 홍보하고자 ‘피의 저택’을 꾸미고 참가자들이 직접 프로그램 속 게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굿즈를 판매하는 대신 경품으로 내걸었다. 웨이브 관계자는 “젊은 층의 반응이 특히 좋았고, 에스엔에스에서도 화제가 돼 충분한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콘텐츠 업계의 팝업스토어 사례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로 온라인으로 소비하는 콘텐츠를 오프라인으로 경험하고 이를 에스엔에스에 올리고 싶어 하는 팬들의 욕구와 콘텐츠를 홍보하려는 업계의 목적이 맞아떨어지는 팝업스토어는 문화 콘텐츠 업계 전방위로 퍼져 나갈 것”이라며 “공간을 꾸미는 콘텐츠와 상품을 얼마나 독특한 색깔로 차별화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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