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 과학] 韓美日 기술동맹 복원 성과…제도 개혁은 과제

이병철 기자 2023. 5. 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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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 경쟁 속 미·일 양국과 기술동맹 복원
과학기술 우선순위에 두는 정책 방향도 긍정 평가
수월성·실패 용인하는 제도 정비는 과제

이달 10일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는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현장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미국, 일본과의 기술동맹을 복원했고, 12대 국가전략기술을 발표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도 착실히 진행했다. 누리호 2차 발사 성공, 달 궤도선 ‘다누리’의 임무궤도 안착 등 눈에 보이는 성과도 적지 않았다.

다만 기초연구에 대한 부족한 지원과 연구개발(R&D) 제도의 정비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혔다. 미국, 일본과의 기술 동맹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위한 세부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순방마다 과학 챙긴 윤석열 정부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행보에서 가장 돋보인 건 이른바 ‘기술 동맹’의 복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요 해외 순방 때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일정을 빠지지 않고 챙겼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국빈 방문 때 보스턴의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찾아 디지털 바이오 분야 석학들을 만났다. 아난타 찬드라카산 MIT 학장을 비롯해 모더나 창업자인 로버트 랭거 교수 등을 만나 바이오 혁신 정책을 가다듬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조만간 디지털 바이오 혁신 전략을 담은 제4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린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대한민국이 우주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2045년까지의 정책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캐나다를 방문해 인공지능(AI) 전문가들을 만났고, 올해 1월에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를 방문해 양자 분야의 석학들과 대화를 나눴다. 과기정통부는 윤 대통령이 직접 챙긴 AI, 양자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과의 기술 동맹을 강화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차세대 반도체, 첨단 패키징, 첨단 소재·부품·장비 등 3대 분야를 중심으로 민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동맹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반도체 외에도 우주, 양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늘고 있다. 미국 과학기술 사령탑인 아라티 프라바카(Arati Prabhakar)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이 이달 19일 서울을 방문해 한·미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과학기술 선도국 협의체에도 한국이 참여하기로 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나왔다.

신성철 과학기술협력대사(전 KAIST 총장)는 “기술패권 시대를 맞아 지난 1년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대통령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나아갈 방향을 잡았다고 본다”며 “이런 행보가 실제 우리 과학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해외 선진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협력도 가시화됐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10년 넘게 단절됐던 한일 과학기술 협력 채널이 다시 재개된다. 한국과 일본은 2011년을 마지막으로 12년 동안 정부 차원의 과학기술 협력협의회를 개최하지 않고 있었다. 정치·외교 문제가 과학기술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친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다음 달 중으로 일본 문부과학성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8일(현지시간) 보스턴 인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열린 MIT 디지털바이오 석학과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우주와 양자, AI, 디지털 바이오 등 첨단 과학기술 전분야에 대한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송치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소재 부품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 한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손을 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을 하는 와중에 우리도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현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기획본부장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 일본과의 협력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이 부분을 중요한 어젠다로 삼은 게 굉장히 바람직하다”며 “기술 동맹의 경험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에 실행 계획을 잘 짜는 게 중요해보인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은 공평보다 수월성이 중요… 실패 용인하는 제도도 필요

과힉기술 분야의 원로들은 과학기술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은 ‘수월성(秀越性)’이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과학기술은 공정이나 평등보다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집중해서 지원하는 게 필요한데, 지역 안배나 남녀 성비를 고려하는 제도 때문에 수월성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 원장은 “지방을 안배하거나 남녀 성비를 고려하는 프로그램은 별도로 기획하고, 실력대로 줄 세우는 프로그램은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런 구별이 없이 형평성만을 내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과학기술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와 방향은 좋은데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지난 1년간 방향을 잘 잡은 만큼 남은 4년 동안은 대통령의 의지와 지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게끔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의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이우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도 제도 정비를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최상위에 두고 있다는 건 옳은 방향”이라면서도 “제도적으로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손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패를 과감하게 용인하는 새로운 R&D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부의장은 “한국 연구계는 연구 성공률이 90%를 넘는데, 논문 몇 개 쓰고 특허 몇 개 내는 식의 정량적인 평가만 하다보니 성공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이라며 “연구 자체의 본질적인 가치를 평가하려면 정성적인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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