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 늘려놓은 '깜깜이 복지'의 민낯 [尹 취임사 다시보기]
사회적 약자 위한 핵심과제 발표
관련 예산 74조4000억 투입해
기재부, 20대 사업 발표했지만…
세부 사업리스트 알리지 않아
복지 예산 늘었지만 약자 보호 의문
고용 부문 예산 2조여원 감소
"자유시민이 되기 위해선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를 갖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이후 윤 정부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를 '약자 복지'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74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힌 목표를 지금 얼마나 지켰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열린 취임사에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자유 시민이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결과였다. 윤 대통령이 '자유 시민'의 조건으로 강조한 건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자유를 위한 경제적 기초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2021년 12월 전북대에서 열린 대학생과의 만남에서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뿐더러 왜 개인에게 자유가 필요한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며 "일정한 수준의 교육과 기본적인 경제 역량이 있어야만 자유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약자 복지'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참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이번 기사에선 논외로 했다.]
'약자 복지'를 향한 정부의 관심은 지난해 9월 비상경제장관회의 이후 발표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예산 4대 핵심과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장애인, 취약청년, 노인·아동·청소년 등을 4대 핵심과제로 선정해 74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65조7000억원) 대비 8조70 00억원 증가한 금액이다.
정부는 74조4000억원의 예산을 20개 중점 사업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저소득층은 생계·의료급여 재산 기준 완화, 중위소득 기준 인상, 교육급여·에너지바우처 인상, 주거급여 추가 지원, 한부모 자녀 양육비 기준 상향 등의 사업에 21조2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할 예정이다. 장애인(5조8000억원), 취약청년(24조1000억원), 노인·아동·청소년(23조3000억원)도 각각 5대 중점 사업을 선정해 예산을 투입한다고 알렸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흘렸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혔듯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를 다지고 있을까. 그사이 2023년 예산안이 확정됐고, 관련 사업은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정부가 밝힌 20대 중점 사업을 제외하면 사회적 약자 복지의 세부적인 사업리스트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깜깜이라는 건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발표한 20대 중점 사업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사업이 구성돼 있다고 보면 된다"며 "세부적인 내용은 관련된 정부부처의 자료를 따로 찾아봐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재부가 금액 등 사업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며 "이 사업은 왜 포함했고, 저 사업은 왜 빠졌느냐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전체 사업리스트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십조에 달하는 세금을 '약자 복지'에 투입하고 있지만, 세부사업을 따로 관리하지도, 그게 무엇인지 공개할 생각도 없다는 거다.
백번 양보해서 100% 정부를 신뢰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복지 예산이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느냐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선 주요 사업별로 복지 예산이 얼마나 늘고, 줄어들었는지 분석해야 한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사회복지 예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사회복지 사업 중 예산이 삭감된 금액은 13조2000억원, 증액된 금액은 24조1000억원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지난해보다 10조9000억원 늘어났다.
앞서 언급했듯이 관건은 어디를 늘리고, 줄였느냐다. 사회복지 예산이 줄어든 대표적인 사업은 고용부문이다. 올해 고용부문 예산에서 지난해보다 2조3246억원 감소했다. 고용 안전망확충과 고용창출에서 각각 1조146억원, 1조8834억원 줄었다. 특히 고용창출 사업에선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예산이 7659억원, 청년내일채움공제 6723억원, 고용창출장려금 5474억원을 감액했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예산이 늘어난 사업이 정상화하면서 예산이 축소된 것"이라며 "정책 대상인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고용여건도 개선돼 신규지원을 중단하거나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나타난 경기침체로 취약청년은 물론 전체 청년의 고용난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부의 해명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주택부문에서도 임대주택지원 융자·출자 예산이 전년 대비 각각 4조5086억원, 1조1358억원 감소했다. 임대주택지원 융자 사업 중 예산이 가장 많이 삭감된 세부 사업은 다가구매입임대(융자)로 2조5722억원이 줄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다가구매입임대 사업은 임대주택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지난해 발생한 반지하 주택 문제와 최근 전세사기 사태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윤 정부는 분양주택지원 사업 예산을 1조1000억원 증액했다"며 "주택을 건설하고 분양하는 사업의 예산은 늘리면서 임대주택사업 예산을 줄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복지 예산이 늘어난 사업은 무엇일까. 예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공적연금이었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사업이 포함된 공적연금의 예산은 지난해보다 8조3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회복지 예산이 10조9000억원 늘었다는 걸 감안하면 전체의 76.1% 공적연금이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
이밖에도 기초생활보장 예산 2조4000억원, 산재보험 예산 7000억원, 노인 기초연금 예산 2조5000억원 등이 증가했다. 이는 정부의 '약자 복지' 강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예산이다. 매년 나가는 법적의무 지출이라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은 "예산이 늘어난 공적연금과 기초생활보장 부문은 법적 의미 지출"이라며 "복지정책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예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적연금은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것이고 노인 예산은 노인인구가 매년 5%씩 증가하기 때문에 늘어난 것"이라며 "의미 있는 분야에서 복지 예산이 늘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종합해 보면, 사회적 약자를 챙기겠다고 밝힌 74조4000억원의 사업은 세부 리스트를 확인할 수 없다. 지난해보다 사회복지 예산이 늘어난 것은 대부분 법적 의무 지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산으로 촘촘한 복지가 가능할지, 사회적 약자가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를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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