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 경제] ‘물가 잡기’ 성과 낸 통화정책…“고금리 부작용 줄여야”
“통화정책 적절하게 수행…인플레 선제 대응”
물가·금융·성장 상충관계 심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임기를 시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한 탓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국에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시점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시작한 직후이기도 했다. 한국은행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금리 인상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1년 동안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기존 연 1.5%에서 3.5%로 총 2%포인트(p) 끌어올렸다. 누적된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5~6%까지 뛰었던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3%대로 내려왔고, 은행권 가계대출도 18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한국은행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물가는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지만, 대출금리도 덩달아 오르면서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이 불어나고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 위험도 커졌다. 고금리로 인한 소비 위축 가능성과 부동산 시장 냉각, 경기 침체 우려도 한국 경제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 글로벌 긴축 기조에…한국은행도 1년간 전례 없는 금리 인상
한국은행은 미 연준과 마찬가지로 지난 1년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해 4월 취임 직후 참석한 첫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高)물가 상황을 언급하면서 “물가에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 기준)은 지난해 5월부터 5%를 넘어섰고, 6월에는 6%를 돌파했다. 이어 7월에는 6.3%까지 올라 정점을 찍었다.
한국은행은 물가상승률을 목표 수준인 2%로 되돌리기 위해 2021년 8월부터 시작한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1월까지 7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그 과정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씩 인상하는 ‘빅스텝’도 두 차례나 단행했다. 한국은행이 빅스텝을 밟은 것도, 금리를 7연속 인상한 것도 처음이었다.
당시 뒤늦게 물가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한국은행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이를 따라가느라 금리 인상폭을 확대한 측면도 있다. 연준은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한 번도 아니고 4연속 단행했다.
누적된 금리 인상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부동산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대출금리가 오르자 지난해 중순을 기점으로 주택거래가 줄고 집값이 하락하면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고금리와 정부 대출규제가 맞물린 영향으로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2조6000억원 줄었다. 18년 만에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이 가시화한 것이다.
올해 1월까지 5%대의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던 물가상승률도 서서히 둔화하는 모습이다. 지난달에는 물가상승률이 1년 2개월 만에 3%대로 떨어졌다.
◇ “한은, 금리 인상 적절했다”…고금리 부작용도 하나둘씩 수면 위로
‘물가 안정’이 최우선 정책 목표인 한국은행은 지난 1년간 본업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행이 금융시장 불안을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통화정책을 적절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가는 조금씩 잡히는 모습이지만, 고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고금리로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이 가중되면서 소비가 위축되면 경제 성장 동력이 더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주요 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1.5%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올 들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점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연 3.5%로 2연속 동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가파른 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문제가 생기는 것도 기본적으로 금리가 빠른 속도로 오르면서 생기는 부작용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전세 사기 문제에 대해서도 “전세 사기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금리가 올라가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라고 했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 있던 고질적인 전세 대출 문제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한 것이다. 이 총재는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여러 불안정이 생기지 않게 신중하게 조정하고 대비해야 하는 게 한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물가 안정과 성장, 금융 안정 간 상충관계가 심화된 만큼, 한국은행도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정교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민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그간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며 “최근에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도 커졌고, 수출 부진으로 무역수지 적자도 지속되고 있는데 이런 요인들이 환율 등 금융·외환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변수들로 인해 한국은행이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등 여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도 “정부가 전기료 인상 등을 미뤘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이 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측면이 있어 아직 물가 안정을 확신하기 어렵다”며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미국에서 불거진 금융시장 불안이 한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한국은행이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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