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대반격, 자포리자에서 시작하나…핵연료 누출 위기 고조
[러, 우크라 침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령 중인 자포리자원자력발전소를 둘러싼 위기가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계기로 다시 증폭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6일 원전 주변에 있는 점령지 에네르호다르 등 18개 마을의 주민들을 남부의 러시아 다른 점령지로 소개하면서, 전투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는 반격 때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주) 지역과 크림반도를 잇는 육로 회랑을 점령해, 두 지역을 분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자포리자주 내에 있는 두 도시 자포리자와 멜리토폴로 이어지는 지역을 공세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이 있는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는 우크라이나 반격 공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 7일 언론에 이 원전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이 “주기적으로 포격 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며 “심각한 핵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임명한 자포리자 주지사인 예브게니 발리츠키는 “지난 며칠 동안 적들이 전선 근처 주거지에 포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리자원전의 6개 원자로는 현재 가동되지 않고 있으나, 방사성 물질 방출을 막는데 필수적인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는 전력 문제가 심각하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미 지난 3월 포격으로 냉각 장치에 연결된 주전력선이 일시적으로 끊긴 일도 있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이 원전 주변에서 포격전을 벌이며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원전을 방패막이로 자신들에게 포격을 가한 것에 대한 방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먼저 포격을 가해 반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전 전력 배분 문제 갈등은 위기의 정치적 배경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전 자국 전체 전력 생산 20%를 자포리자원전에서 생산했고,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와 인근 러시아 지역에도 자포리자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공급했다. 러시아가 값싼 가스 등 에너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우크라이나도 자포리자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배분해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침공 뒤 자포리자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더이상 벨라루스 등으로 보내지 않고 대신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 뒤인 지난해 3월 자포리자원전을 점령해 우크라이나의 생각은 실현되지 못했다. 러시아는 전력망 운영과 전력 배분을 이전 상태대로 유지시켰다.
러시아가 자포리자원전을 점령한 뒤에도 원전 운영은 우크라이나 회사가 맡아왔는데,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루마니아를 거쳐서 유럽연합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원전 운영사를 러시아 회사로 바꾸었다. 러시아는 자포리자원전을 우크라이나 전력망에서 완전히 끊어버리고, 자국 전력망에 연결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때부터 우크라이나 직원들이 러시아군에게 구타 등 괴롭힘을 당한다는 보도가 나왔고 원전을 둘러싼 포격전이 시작됐다.
1980년대에 준공된 자포리자원전은 설계에 결함이 있던 체르노빌 원전과는 달리 안전성이 비교적 높다고 알려졌다. 원자로가 강진에도 견디는 견고한 봉쇄 빌딩에 있고, 발전기도 봉쇄 빌딩에 같이 있다. 2001년 9·11 테러 때처럼 대형 비행기가 충돌해도 원자로 시설은 손상받지 않게 설계돼 있다.
문제는 원자로에 연결되어 있는 전력선 손상이다. 주전력선이 손상되면, 냉각장치는 인근의 석탄발전소에서 제공되는 전력이나, 내부의 디젤 발전기로 가동된다. 임시적인 데다 충분하지 않다. 계속되는 포격으로 원전 주변 시설과 주전력선이 손상을 입고 있다.
지난해 8월25일 두 차례 화재로 원전으로 연결되던 750㎸ 전력선 4개 중 마지막 하나가 끊어지면서, 위기가 커졌다. 이런 위기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우크라이나 반격공세 예고를 계기로 위험이 다시 고조된 것이다. 현재 자포리자원전은 ‘냉각 폐쇄’ 상태인데, 냉각 유지를 위해 충분한 전력이 필요하다. 또 사용후 핵연료도 저장고에서 냉각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냉각 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원자로가 녹아내리고, 사용후 핵연료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핵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자포리자 원전 인근을 안전지대로 설정해, 전투행위를 막자고 호소하고 있으나, 성과가 없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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