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감당 어려워"…재계, ESG공시 의무화 속도조절 촉구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재계가 속도 조절을 촉구했다. 2025년으로 예정된 ESG공시 의무화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기업경영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협력사의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합산하는 스코프 3(Scope 3, 기타 간접배출)단계는 주요 대기업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는 9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제3차 ESG 아젠다그룹 회의'를 개최했다. 지난해 출범한 대한상의 ESG아젠다그룹은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그룹, 삼성SDI 등 주요 대기업과 신한금융지주·하나은행 등 금융사 19곳으로 구성됐다. 이날 회의에는 국내 20대 그룹과 주요 은행 ESG 담당 임원 14명이 자리했다.
올해 처음 열린 회의에서 기업들은 ESG 공시 의무화 도입 시기를 늦출 필요성을 요구하며 △정부의 지원정책 확대 △전문인력 양성방안 필요성 △ESG평가시장 투명화 등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했다. ESG공시 의무는 2025년 총액 2조원 이상의 코스피(유가증권시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도입되며, 2030년부터는 코스피 상장로 확대된다.
회의에 참석한 한 대기업 ESG담당 임원은 "현실적으로 시기를 조절해야 할 것"이라며 "ESG공시 의무화를 급하게 추진할 경우 기업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기간 부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10대 그룹사 임원도 "ESG 전문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 지원정책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협력사까지 합산하는 스코프 3단계 도입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스코프 3단계는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을 협력사까지 확대한 단계로, 직·간접배출만 따지는 1·2단계보다 높은 목표다. 대기업이라도 협력사까지 포함하게 될 경우 기준치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중견·중소기업의 ESG경영 도입을 위한 정책지원과, 전문인력 육성 필요성도 논의했다. 재계 관계자는 "중견·중소기업은 아직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대응 여력이 없고 ESG전문 인력은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수출기업 등 ESG필요성이 큰 협력 업체를 중심으로 자금지원과 ESG교육·컨설팅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SG평가 기준을 보다 폭 넓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명확한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이른바 '깜깜이 평가'를 줄여 대상기업의 ESG품질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국내 ESG평가기관의 경우 글로벌 평가기관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공개 정보가 적다는 것이다. 토론에 참석한 대다수 기업 임원들은 "평가기준이 상이하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에 앞서 주제발표를 맡은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장도 ESG평가기준의 신뢰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소장은 "ESG평가 신뢰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평가사는 공적자금 집행 참여를 배제하는 방식을 통해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기관에서 ESG 평가사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추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ESG경영 접근 방식을 다변화 시켜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단순한 사회공헌활동(CSR)이 아닌 국가 간 개발협력으로 확대해 공적자금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준희 법무법인 지평 그룹장은 "개발도상국에 지원해주는 국제개발협력(ODA)사업에 민간기업이 ESG경영의 일환으로 동참할 경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인식시키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시 의무와 전문인력 확보 등 안정적인 ESG경영 확산을 위해 지원을 약속했다. 윤태수 기획재정부 지속가능경제지원팀장은 "글로벌 ESG제도화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는 민간중심 ESG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지원·인프라 구축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윤 기자 mt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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