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대 핵’ 남북관계···대화 없는 일촉즉발 위기[윤석열 정부 1년]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지난해 1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정부 1년간 남북관계는 ‘강 대 강’을 넘어 ‘핵 대 핵’ 위기로 팽창했다. 남북 대화가 중단된 가운데 북한은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을 실전화하기에 이르렀고, 윤석열 정부는 자체 핵무장론까지 거론한 끝에 미국의 핵자산을 통한 확장억제 강화에 나섰다. 남북관계의 키워드가 대화와 평화에서 대결과 핵으로 바뀐 1년이었다.
핵전쟁 위기 고조
북한은 지난해 3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핵실험·ICBM 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선언을 4년 만에 파기했다. 역대급 빈도·강도의 미사일 발사를 예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명시한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한 이후 핵 위협은 빠르게 고조됐다. 지난해 11월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17형 ICBM 완성을 선언한 데 이어 지난달 은밀성·기동성을 강화한 고체연료 주입 신형 화성-18형 ICBM 발사까지 이뤄냈다.
미국을 목표로 하던 북한 핵무기는 남한도 겨냥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을 처음 공개하며 전술핵 실전 배치를 과시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1월1일 전술핵무기 사용 대상은 “명백한 적”인 “남조선 전역”임을 명백히 밝혔다. 지난 3월 전술핵탄두 ‘화산-31’과 수중 핵무기 ‘해일’을 처음 공개하기 이르렀다.
“힘에 의한 평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는 역대급 한·미 군사훈련과 미국 전략자산 등 확장억제력으로 북핵 위기에 대응했다. 여권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 한국은 핵무장론을 지렛대 삼아 미국으로부터 핵협의그룹(NCG) 신설과 핵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전개라는 강화된 확장억제력을 받아냈다.
북핵 고도화로 본격화된 한·미·일 군사협력은 지난해 11월 세 나라 정상의 ‘프놈펜 선언’과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4월 한·미 정상회담,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을 거쳐 강화되고 있다.
남북 ‘핵 대 핵’ 힘겨루기 결과는 급격한 한반도 긴장 고조였다. 지난해 9월 미국 핵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등장하자 북한은 역대 첫 북방한계선(NLL) 이남 탄도미사일 발사 등 각종 도발적 행동을 단행했다. 한·미는 그때마다 미 전략폭격기와 항모 등이 동원된 고강도 훈련으로 맞대응했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서울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키는 도발을 자행하자 윤 대통령은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한 2018년 남북 9·19 군사합의 조건부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라진 대화 여지
남북 당국 간 대화는 2018년 12월 이후 4년 넘게 단절됐다. ‘핵 대 핵’ 대결로 대화·협력의 여지는 사라졌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에 제시한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은 형해화됐다. 북한은 급기야 지난달 형식적 연락이나마 주고받던 남북 통신연락선을 모두 차단했다. 남북 간 확전과 오판 가능성을 제어하는 마지막 소통 채널을 끊어버리며 긴장 고조를 선택한 것이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 대화 제안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한·미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대화 제의는 “허위”라는 것이다. 담대한 구상 제안 직후 한·미가 대규모 연합훈련에 돌입하고, 한·미 정상이 지난달 “북한과 외교 의지를 재확인”한다며 “정권 종말”(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거론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며 선을 그은 상태다.
대화가 후순위로 밀린 것은 남북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북한은 ‘신냉전’ 정세를 활용해 핵무력을 최대한 고도화시킨 뒤 내년 미국 대선 전후로 미국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남한은 핵을 가진 북한에 대응할 수단으로 대화 대신 압박을 선택했다. 역대 정부 첫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통일부의 대북 교류·협력·대화 조직을 축소했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에 몰두하느라 북한 문제는 관심 밖이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이 균형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 대화 노력 없이 미국 확장억제력을 위시한 대북 압박에 치중됐다는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9일 통화에서 “북핵이 한국을 실존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대북 억제력을 강화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면서도 “북한 문제는 밀고 당기기가 돼야 하는데 미는 건 보여도 대화로 당기는 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목표를 위해 대북정책에 대화도 비중 있게 담겨야 하는데 확장억제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며 “핵 대 핵 정면충돌 국면에서 위기가 촉발되면 제어할 장치가 없다”고 우려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을 공멸시킬 핵전쟁 위기가 전면에 부상했다”며 “남북 대화·교류·협력의 모든 생태계가 사라질 위기”라고 진단했다.
남북관계는 당분간 계속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전술·전략핵 고도화를 멈추지 않고 있고 이에 맞선 한·미, 한·미·일 군사협력도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좌우하는 동북아 정세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으로 치닫는 상황도 불안 요소다. 북한이 각종 제재·압박에 백기를 들고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요원하다.
대화를 통한 신뢰 회복과 안정적 위기관리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임 교수는 “북한을 힘으로 굴복 시켜 만드는 비핵화 합의는 신뢰가 없어 오래갈 수 없다”며 “신뢰를 구축해 평화와 공존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소한의 한·중 협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북한과 대화 재개시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정교히 마련해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빗속에 모인 시민들···‘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촉구 대규모 집회
- 트럼프에 올라탄 머스크의 ‘우주 질주’…인류에게 약일까 독일까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나도 있다”…‘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 흔드는 경쟁자들
-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들여다보니…짙게 드리워진 투기의 그림자
- 말로는 탈북자 위한다며…‘북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왜 나 몰라라
- 경기 안산 6층 상가 건물서 화재…모텔 투숙객 등 52명 구조
- [산업이지]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지스타에서 읽은 트렌드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10)“이재명 방탄? 민주당은 항상 민생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