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한겨레 세월호 보도에 "바로잡으라" 언론노조 권고 파장
언론노조 민실위, '세월호 진상규명 보도 평가' 보고서
집필자 김성수 기자, 공영방송·한겨레에 정정보도 권고
"외력 침몰, AIS·CCTV 조작 모두 사실 아닌 것으로 확정"
기자들 "의혹 제기 못하나" "사후 결과론적 평가" 반박도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위원장 이은용)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다룬 언론 보도를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KBS·MBC 양대 공영방송과 한겨레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노조 민실위는 세월호 외력 침몰, 세월호 AIS 항적 조작, 세월호 CCTV 증거 조작·은폐 의혹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됐다”며 이를 보도한 주요 언론에 '편집자 주'를 달아 사실을 바로 잡을 것을 권고했다.
민실위는 지난 4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관련 보도 평가와 권고>라는 이름으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를 9년 동안 취재해온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가 집필하고 언론노조 민실위원들의 회람을 거쳐 공식 채택된 보고서다. 강제가 아닌 권고이기 때문에 각 언론사 보도·편집국이 사실상의 기사 정정 요구를 이행할지 미지수다. 보고서가 '부실한 보도'로 지목한 일부 기자들은 “침몰 원인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의혹 제기 자체를 틀어막는 것 아니냐”, “취재 과정을 외면한 사후 결과적 평가”라고 반박하고 있다. 보고서로 말미암은 언론계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김 기자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관해 이른바 '내인설'을 과학적으로 보도해온 기자다. 내인설은 무리한 증·개축, 일상적 화물 과적, 부실 고박, 관행적 평형수 감축 등으로 복원성이 취약했던 세월호가 사고 당일 조타 장치인 솔레노이드 밸브 고장으로 통제되지 않는 방향타의 우선회가 발생하여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김 기자는 이번 민실위 보고서에서 세월호 침몰을 '잠수함 후방 추돌'에서 찾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 보고서가 대한조선학회 및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 등 전문기관에 의해 완전 기각됐다고 상세히 서술했다. 대한조선학회와 마린은 세월호 침몰 근본 원인을 극도로 취약했던 복원성이라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현재 내인설만이 과학적으로 설명 되는 상황인데도 잠수함설, 앵커설, AIS 항적 조작설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 보고서는 “참사의 진상규명이 내용적으로는 완성됐지만 사회적 공인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는 언론의 부족한 취재와 보도 문제라는 비판이다.
'외력 침몰' 공영방송 도마 위…“의혹 제기도 못하나”
보고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의혹을 △세월호 외력 침몰 △세월호 AIS 항적 조작 △세월호 CCTV 관련 증거 조작·은폐 등 세 가지로 분류한 뒤, 각 의혹을 다룬 '부족했던 보도들'을 나열하고, 기사에 편집자 주를 삽입해 사실을 바로 잡을 것을 권고했다.
먼저 세월호 외력 침몰 의혹에 관해선 목포MBC 보도 <세월호 내부 변형 최초 확인…외력의 흔적?>(2018년 8월1일자), <세월호 조타수 단독 인터뷰 “배 날개에 충격 있었다”>(2022년 4월14일자)가 꼽혔다. 보고서는 목포MBC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를 불과 5일 앞둔 2018년 8월1일 선조위 내에서 외력설을 주장하던 권영빈 선조위 상임위원의 개인 입장을 검증 없이 대대적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근거가 부실한 세월호 외력 침몰 의혹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만 기여”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목포MBC는 미디어오늘에 “304명이 숨진 참사 원인에 특정한 결론을 내는 대신 추가로 제기되거나 남은 의혹을 시청자와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목소리와 시각을 담아왔다”며 “보고서에 담긴 깊은 고민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목포MBC 역시 세월호 참사로 인한 유가족과 국민 상처를 치유하고, 진상을 규명해 안전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취재·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1년 11월1일자 KBS 뉴스9 보도 <50도 꺾인 스태빌라이저… “운항 중 충격 가능성”>, <'끼익' 소리 뒤 4배 커진 음압… “뭔가 힘이 걸렸다”>도 세월호 외력 침몰 의혹을 다룬 '부족했던 보도들'로 지목됐다. 세월호가 운항 도중 무언가와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로 사참위 용역보고서를 다룬 리포트였다. 보도 나흘 뒤 전문가들은 대한조선학회 학술대회에서 사참위 용역결과물의 방법론과 해석이 비과학적이라고 혹평했다.
보고서는 “사참위 용역보고서라는 단일 소스에만 의존해 의혹부터 제기한 뒤 전문가들의 검증 결과 '무리한 보도'였음이 드러났는데도 이를 모른 척 넘어가 버렸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보고서에 “잠수함이 맞는다고 확신”한다고 밝힌 홍사훈 KBS 기자 실명을 적시하며 비판했는데 당시 KBS 보도를 주도했던 홍 기자는 8일 통화에서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학생과 일반인이 300명 넘게 죽었는데 분명하게 밝혀진 게 없다”며 “언론이 여러 가능성을 보도하는 게 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반박했다. 홍 기자는 “세월호가 자체 결함에 의해 침몰했다고 누가 결론을 확정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외인설이냐, 내인설이냐, 여러 가능성을 점검하는 단계였다. 그래서 국가 예산으로 사참위도 운영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홍 기자는 “털끝만큼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의혹을 제기하는 게 언론 역할”이라며 “'세월호는 자체 결함에 의해 침몰한 게 분명하니 더 이상 입 밖으로 의혹을 꺼내는 건 음모론자'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당시 보도는 우리가 KBS 예산을 들여 교차 검증했던 것”이라며 “김성수 기자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만약 그렇다면 그도 도그마에 빠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만큼 의혹 제기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는 항변이다.
김어준의 고의침몰설… 한겨레 책임은 어디까지
세월호의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항적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2018년 4월 개봉한 김어준씨와 김지영 감독의 영화 '그날, 바다'가 줄곧 제기했던 의혹이다. 하지만 세월호 선체조사위는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의 AIS 항적 데이터를 네덜란드 항적수집업체 메이드스마트사의 데이터와 비교 검증하여 “조작이나 편집된 흔적이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이는 2018년 8월 내인설과 열린안 보고서에 기재됐다.
선조위 이후 출범한 사참위는 그럼에도 AIS 항적 조작 의혹을 직권 조사했으나 검찰 특수단은 세월호 AIS 데이터 조작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사참위는 조작 결론을 담은 조사결과보고서를 작성해 전원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조사위원들은 “기존 선조위 조사와 검찰 특수단 수사 결과를 뒤집을 만한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며 보고서 채택을 부결했다. AIS 조작 의혹에 관한 조사 내용은 사참위 종합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김 기자는 보고서에서 '부족했던 보도'로 2015년 1월15일자 한겨레 보도 <세월호, 병풍도에 바짝 붙어 운항한 이유는?>을 꼽았다. 당시 유튜브 채널 한겨레TV는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정규 방송했는데, 1월15일 기사는 파파이스 공동 진행자였던 김보협 전 한겨레 기자가 김지영 감독의 방송분을 정리·인용한 것이다.
보고서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은 한겨레 소속 기자들이 김어준, 김지영씨와 배석해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이라며 “이는 대중으로 하여금 김어준, 김지영씨가 제기한 의혹이 한겨레의 실력 있는 기자들로부터 상당한 합리성을 인정받은 것처럼 여겨지도록 만든 중요한 기제였다. 그러나 한겨레는 검증 취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김어준, 김지영씨의 세월호 AIS 항적 조작 의혹은 '누군가 좌현 앵커를 고의로 투하시켜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황당한 가설로까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김보협 전 기자는 8일 통화에서 “'파파이스'는 한겨레라는 매체와 김어준이라는 매체가 만나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세월호 고의침몰설 같은 경우 김어준씨가 주로 제기한 것이다. 나는 공동 진행을 했지만 적극적으로 동조하기보다 기자로서 김어준씨 주장에 의문과 반론을 제기하는 쪽이었다. 한겨레가 김어준 주장에 동조하면서 의혹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파파이스를 이끈 건 어디까지나 김어준씨였다는 것이다. 김 전 기자는 “한겨레가 제작진으로서 파파이스에 참여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겨레가 고의침몰설을 증폭시키고 전파했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실제 파파이스를 한겨레가 만든 방송이라고 생각하는 분보다 김어준 방송이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더 많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보고서 존중…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였기에”
“취재 과정 고려 없는 사후 평가에는 동의 못해”
보고서는 세월호 CCTV 관련 증거 조작·은폐 의혹에 관해 △2019년 4월15일 MBC 스트레이트 <세월호 참사 5년, CCTV 마저 감췄나> △2019년 4월16일 KBS 뉴스9 <[단독] 세월호 DVR 수색영상 입수…“사라진 20분, 수색영상도 조작됐다”> △2021년 7월13일 MBC 뉴스데스크 <[단독] '세월호 CCTV' 복원했더니…'1박2일'·'강남스타일'이?> △2021년 7월13일 MBC 뉴스데스크 <[단독] 장비 오작동으로 복원 파일에 오류?…“국과수가 재검증”> △2021년 7월17일 MBC 뉴스인사이트 <세월호 CCTV의 엉뚱한 파일… 그 오류에 주목하는 이유> 등을 '부족했던 보도'로 꼽았다.
사참위는 세월호 선내 CCTV 영상 저장 장치인 DVR에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했는데 그 근거로 DVR 오른쪽 손잡이의 고무 패킹이 수중 영상 속에선 떨어져 있었는데 바지선 위 촬영 영상 속에서 붙어 있었던 점을 제시했다. 뉴스파타는 문제의 고무 패킹은 떨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수중에서 수압에 의해 눌려 있었던 것이었다고 실험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검찰 특별수사단과 세월호 특검도 DVR 바꿔치기 및 CCTV 영상 조작 의혹 등을 사실무근으로 결론 냈다. 그럼에도 사참위 진상규명국은 DVR 바꿔치기, 수중 영상 조작·은폐, CCTV 영상파일 조작이 모두 실재했다는 조사결과보고서를 전원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사참위 조사위원들은 지난해 5월 “진상규명국의 조사 내용이 검찰 특수단과 특검 수사 결과를 뒤집을 만한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며 보고서 채택을 부결했다. 세월호 CCTV 관련 모든 의혹은 사참위 종합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보고서가 지목한 보도의 담당자인 공영방송 기자들은 보고서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지나치게 사후적이고 결과론적 평가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스트레이트 제작진이었던 한 MBC 기자는 “보고서는 스트레이트 보도에 관해 '(고무 패킹이) 수압에 의해 눌린 상태였음을 유추하기 어렵지 않았다'고 언급했는데 당시 우리 취재팀이 '수압에 의한 변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증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보고서 평가는 너무 손쉬운 사후적 평가, 결과론적 평가일 수 있다. 만약 누구나 그렇게 쉬운 반박이 즉각 가능했다면, 왜 당시 수많은 매체들은 사참위 발표 직후 '수압'을 떠올려 사참위 주장의 허위성을 곧바로 지적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기자는 “스트레이트 보도 이후 뉴스타파의 '수압' 관련 검증 내용을 기사로 접했고 '좋은 보도'라고 생각했다. 또 '당시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하는 자책을 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뉴스타파 보도가 탁월했다고 해서 그에 미치지 못한 다른 모든 보도가 부당한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이 기자는 'MBC 보도에 검증이 없었다'는 보고서 지적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반박했다. 이 기자는 복수의 영상분석 전문가,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있었던 민간 잠수사들, CCTV 저장 장치를 수거해 온 해군 잠수사, 당시 저장 장치 수거를 직접 요청했다는 전직 해경 관계자를 만나 질문했고, 군에도 사참위 발표에 관한 해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그러나 당시 관련자 및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사참위 발표에 구체적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보도 당시에는 사참위 발표 내용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 가설'이 제기되지 못했고 그 발표 내용은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당장 이를 허위라고 볼 만한 근거도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는 정도의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보도 적절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엄밀한 평가가 필요하다”면서도 “평가의 잣대를 관련 사실이 더 많이 드러난 '지금 이 시점'에서 찾는 것은 가혹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 기자와 언론노조 민실위가 당시 최선을 다해 사실관계를 다각적으로 검증하려 했던 취재진의 노력을 무시한 채 '검증 부실'을 지적하는 건 제대로 된 평가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세월호 DVR 수색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던 강나루 KBS 기자도 “내 기사를 반박하는 뉴스타파 기사를 본 적 있다”며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반박 기사였기 때문에 당시 반론을 하진 않았다”고 했다. 강 기자는 “나로서는 관련자들을 접촉하고, 의원실까지 협업하여 보도했기 때문에 당시 충분한 내용을 담았다고 생각했다”며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보고서 작성자)는 나보다 세월호 취재와 조사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보도가 충실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만회하려던 노력…문제의 시작
보고서는 '부족했던 보도들'에 관해 “기자 개인이나 소속 매체의 악의나 실력 부족이 깔려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오히려 대다수 기자와 매체는 세월호 참사 초기 유가족과 국민에게 큰 상처와 실망을 줬던 '보도 참사'를 만회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을 수 있다”며 “유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보도를 내놓겠다는 진심과 열정이 부지불식간에 유가족의 관점과 입장을 취재 기자가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데로까지 이어진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출입처 취재 시스템의 한계를 짚었다. 보고서는 “대다수 언론이 갖추고 있는 '출입처 중심 취재 시스템'으로는 9년이라는 초장기 이슈로 진행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관련 취재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어떤 기자를 어느 시점에 투입하든 특정 진상규명 관련 과제나 의혹이 최초에 어떤 상황과 맥락 속에서 정초하거나 제기됐는지, 앞선 수사나 조사를 거치는 동안 관련 쟁점들은 어떻게 변동했는지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취재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자의 정보력과 이해도가 진상규명 과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 유가족이나 시민단체들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관점과 입장에 휘둘리는 취재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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