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근거 없는 '괴담'
12년 만에 복원된 한일 셔틀 외교를 위해 서울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 전문가들의 후쿠시마 현장 시찰단 파견’ 카드를 내놓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꼭 필요하다는 우리의 절박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국민 건강과 해양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형식의 (오염수) 방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의 합의에 따라 정부가 23일 우리 시찰단을 파견한다. 시찰단은 오염수의 안전한 방류 사실을 기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의 관계자 면담, 오염수 해양 방류 시설의 시찰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 시찰단 방문은 시작일 뿐
시찰단이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에 대한 안전성을 완벽하게 확인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오염수의 방류를 시작하지도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시찰단이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들러리’일 뿐이라는 주장도 억지스럽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재앙적인 지진해일로 벌어진 참혹한 사고의 뒷수습을 우리의 막연한 불안을 핑계로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물론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잘못된 대응은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당당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양보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게 양보해주는 합리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재앙적인 자연재해는 일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관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번 시찰단 파견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우리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충분히 고려해서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더욱 확실한 안전 대책을 강화해주는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 정부가 우리에게 적절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주고, 필요하다면 우리만을 위한 맞춤형 대책도 마련해줘야 한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위치한 우리 입장에서는 절대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책임지고 관철시켜야만 하는 일이다.
우리 시찰단이 후쿠시마 현지에서 직접 오염수의 시료를 채취해서 분석해야 한다는 일부 환경단체의 떠들썩한 주장도 사실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 12년 동안 모아놓은 오염수에서 직접 채취한 시료를 분석한다고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이나 위험성을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우리가 직접 수산물을 채취한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오염수 해양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기술적인 확인‧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전적으로 맡겨두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IAEA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부터 특별조사단을 구성해서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 대한 정부를 수집‧분석해서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에 우리 전문가도 참여했다.
1957년부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176개 국가가 함께 노력하고 있는 IAEA의 권위와 공정성을 의심해야 할 어떠한 핑계나 이유도 없다. 일본이 미국‧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어서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물론 우리가 뒷전으로 빠져있어야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IAEA를 통한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특별조사단의 일원으로 후쿠시마에서 채취한 시료의 독자적인 분석 업무도 수행하고 있다. 우리가 굳이 독자적인 조사단을 후쿠시마 현장에 보내야 할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다. 더욱이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관심이 국제 사회의 관심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 엉터리 괴담에 흔들리지 말아야
후쿠시마 오염수에 들어있는 삼중수소가 가장 두려운 방사성 핵종으로 알려진 세슘-137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티머시 무소라는 미국 생물학 교수의 발언은 어처구니없는 괴담이다.
“세슘-137이 체내에 들어왔을 때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은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그렇지 못해 내부 피폭이 심각하다”는 언론에 소개된 그의 발언은 과학적으로 명백한 오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엉터리다.
감마선은 종자(種子)나 식품에 붙어있는 미생물을 파괴해서 죽여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전자기파다. 세슘-137에서 방출된 감마선은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우리 몸의 세포에 치명적인 피해를 남기게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방사선 피폭에 의한 독성(부작용)은 단순한 ‘생물학적 효과비’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독극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방사선 피폭에 의한 부작용은 피폭량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무리 효과비가 낮더라도 피폭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반대로 효과비가 아무리 높아도 피폭량이 충분히 적으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용량(用量)이 독(毒)을 만든다’는 로마의 명의(名醫) 파라셀수스의 명언이 바로 그런 뜻이다.
삼중수소와 관련된 과학 문헌 70만여 건을 전수 조사했더니 “사실상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하다”는 그의 발언도 역시 조심스러운 것이다. 삼중수소의 인체 영향에 대한 과학 연구가 없었다는 사실은 삼중수소의 인제 위해성에 대한 우려가 실제로 심각하지 않다는 가장 확실한 실증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인체 위해성이 심각하지 않은 방사성 핵종의 인체 위해성을 애써 연구해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거꾸로 인체 위해성이 심각한데도 본격적인 연구를 외면할 정도로 무책임하지도 않다.
실제로 삼중수소 피폭으로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런 삼중수소가 후쿠시마 오염수의 경우에 갑자기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억지임에 틀림이 없다.
자신의 발언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설픈 생물학자를 ‘저명 학자’나 ‘석학’이라고 소개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발언의 내용에 대한 확실한 고민도 없이 ‘미국 대학교수’라는 이유만으로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요란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하루빨리 청산해야만 하는 몹시 부끄러운 ‘사대주의적 관행’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포기하고 ‘장기 저장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도 억지다. 흙이나 돌과 같은 고체 상태의 폐기물이라면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액체 상태의 오염수를 장기간 안전하게 저장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저장탱크의 규모를 원유 저장탱크처럼 키우면 된다는 공학자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대형 저장탱크가 더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석촌호수 같은 인공호수를 만들 수도 있다는 억지도 황당한 괴담이다.
후쿠시마에서 방류된 오염수에 들어있는 방사성 핵종이 ‘해류’를 따라 우리나라로 한꺼번에 몰려올 가능성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빠른 물살을 뜻하는 해류는 오염물질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고 일반적인 상식이다.
해류가 언제나 일정하게 흐르는 것도 아니다. 삼중수소가 무겁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그래서 바다 밑에 사는 넙치나 조래류를 경계해야 한다는 괴담도 바닷물의 대류를 고려하지 않은 엉터리 주장이다.
오염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희석’(稀釋)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방사성 핵종이 희석에 의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희석된 총량을 모두 마시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인체 독성은 희석에 반비례해서 줄어드는 것고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공학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과학적 상식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화물선의 평형수에 대한 괴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삼중수소가 생물체의 몸속에 누적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삼중수소는 베타선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화학적으로는 수소와 똑같은 생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몸속의 지방(脂肪) 속에 녹아 들어가서 누적되는 수은과 같은 중금속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의 몸속에서 삼중수소는 다양한 생리작용 덕분에 대부분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배설된다. 바다에 사는 어류의 경우에는 2~3일 지나면 대부분 배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선 피폭에 의한 부작용이 대표적인 만성 질환인 암의 발생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방사성 핵종으로 오염된 바닷물이나 수산물을 한 번 섭취하거나 접촉했다고 당장 치명적인 암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서 반복적‧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다면 당장 재앙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콜레라나 살모넬라에 오염된 수산물처럼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 설치된 1000여 개의 대형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오염수의 양이 엄청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오염수를 한꺼번에 방류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125톤 정도의 오염수를 방류한다. 하루 400명이 배출하는 하수와 같은 규모다.
후쿠시마 해안에 있는 100가구의 아파트 1동에서 배출되는 하수를 ALPS(디핵종제거장치)로 처리하고 400배로 희석시켜서 방류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공짜도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를 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당장 재앙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처럼 공포에 떨 이유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에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방사성 핵종의 총량은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에 들어있는 양보다 1000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년 가까이 후쿠시마 근해의 수산물 채취를 금지했고 지금도 방사성 핵종에 오염된 수산물이 발견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가 확인된 경우는 없었다.
일본 정부가 IAEA와 합의한 방류 절차를 확실하게 지켜서 이웃 국가를 안심시켜줘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국가적 신뢰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경계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어설픈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괴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부끄러운 광우병 대란을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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