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영재’ 한재민 “하루라도 쉬면 연주 달라져…저 천재 아니에요” [인터뷰]
최연소 콩쿠르 입상만 줄줄이
“콩쿠르 후, 음악적으로 자유로워져”
이달 말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 협연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로 유학 예정
“초심 잃지 않는 단단한 음악가 될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일찌감치 ‘신동’으로 불렸다. 첼리스트 한재민(17)의 이름 앞엔 언제나 ‘역대 최연소’, ‘영재’, ‘천재’라는 수사가 따라 다닌다.
“아뇨, 저 천재 아니에요. 하루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연주가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그래서 매일 5~6시간은 연습하고 있어요.”
첼로를 처음 잡은 건 만 다섯 살 때였다. 플루트를 연주한 부모님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었다. “어릴 땐 높은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악기를 접할 기회가 많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을 다뤄봤다. 첼로는 누구의 권유도 아닌 다섯 살 한재민의 선택이었다. 그날 이후 첼로는 ‘소년의 삶’이 됐다.
‘첼로 영재’부터 K-클래식 스타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수식어’가 부담일 수 있지만, 세간의 평가를 마주하는 것은 도리어 가볍다. 최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한재민은 “수사에 대한 부담을 느끼거나 그것을 크게 의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란 분야인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타고난 점도 있어야죠. 하지만 전 천재는 아니에요. 천재였다면 2∼3시간만 연습하고서도 좋은 연주를 할 수 있겠죠. 전 연습도 노력도 많이 해야 해요.”
매일 오후 2~3시에 연습을 시작하면 밤 9~10시가 돼야 첼로를 손에서 놓는다. 어떤 날은 새벽 2~3시까지도 연습의 연속이다. “그날 연습해야 할 부분을 더 발견했을 때, 무언가 하나를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 연습은 끊지 않고 이어진다. 그는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웃었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성실한 일과’는 한재민에게 조금 더 빨리 ‘영광의 순간’들을 가져다줬다. 여덟 살에 이미 원주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클래식 음악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최연소’ 예술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2020)했고, 열다섯 살이던 2021년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 지난해엔 윤이상 콩쿠르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무대 위의 한재민은 10대 소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부한 감성과 기교를 보여준다. 당황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에서도 담대한 자신감으로 음악을 마주한다.
윤이상 콩쿠르에선 두 번이나 현이 끊어져 공연을 중단했다. 다시 시작한 무대에선 현이 풀리기까지 했다. 한재민은 그 때 즉흥적으로 핑거링을 바꿔, ‘중단 없이’ 연주를 마무리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은 한재민의 공연을 두고 “기네스북에 등재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줄은 끊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두세 번 끊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당시 협주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들었을 때 희열감이 큰 곡이라, 중간에 연주가 멈췄던게 너무 아쉬웠어요. 세 번째 줄이 끊어졌을 땐, 여기서도 음악을 끊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연주를 이어갔어요.”
‘연습 벌레’ 한재민이 처음으로 첼로를 놓고 쉰 날도 윤이상 콩쿠르가 끝나고서다. “앞으로 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악기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손이 근질근질하더라고요. (웃음)”
일찌감치 여러 콩쿠르를 석권했고, 보상처럼 세계 무대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졌다.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부터 윤이상 콩쿠르에 이르기까지 한재민은 “지난 몇 년간 매일 콩쿠르만 생각하고 살았다”고 했다.
“처음엔 좋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 나갔어요.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를 얻었고요. 그런데 콩쿠르를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은 쉽지 않더라고요.“
콩쿠르의 속성이 그렇다. 준비한 곡을 오차 없이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담아야 하다. 여러 명이 심사위원이 자리하기에 저마다의 기준이 평가를 가른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스탠다드가 강점이 되는 곳이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과정이 행복하진 않았어요. 콩쿠르는 심사위원 7~8명 앞에서 최대한 호불호 없이 연주해야 좋은 성적을 받아요. 연주자 스스로의 만족도와는 무관하죠. 정말 색다르게 해석해서 설득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점수가 갈리는 리스크가 있죠. 나의 아이디어보다는 보편적인 연주를 선택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사실, 음악으로 등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좀 그렇더라고요.”
당분간 한재민에게 새로운 콩쿠르는 없다. 지금은 “다른 콩쿠르를 염두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는 “콩쿠르를 마친 이후 보다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콩쿠르에서의 성취들이 음악가로의 가치관이나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어요. 하지만 연주는 날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커졌어요. 음악 해석에 있어 내가 더 좋아하는 선택을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콩쿠르에 나간 거기도 하고요.”
음악 이야기를 할 때면 내내 진중하던 그는 취미생활인 요리와 축구 이야기를 할 땐 다시 열일곱 소년으로 돌아간다. 까르보나라 파스타부터 고추장찌개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요리 솜씨’다. 축구를 할 땐 한재민만의 철칙도 있다. “손가락이 다칠까봐 음악하는 사람하고만 축구를 해요. 야구는 절대 안하고요.(웃음)”
한재민은 오는 25일엔 구스타보 히메노가 지휘하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닉과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예술의전당)한다. 한국에서 해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첼리스트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곡”이라며 “애절하고 영웅적인 부분이 있는 곡인 데다, 첼로가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관객들의 희열도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을 마친 뒤 한재민은 독일로 향한다.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전문가 학습(professional studies) 과정을 밟는다. 대학원 연주자 과정에 해당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비올리스트 박하양이 이곳에 다닌다. 한재민은 “클래식 본고장에 가서 공부하는 데다, 학생들도 다들 대단한 아티스트라 같이 음악을 하고, 실내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제 10대 후반인 한재민이 걸어야 할 길은 길고 멀다. 그는 “음악가로의 거창한 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커리어에 욕심이 없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음악이 탄탄하면 커리어는 따라오는 거라 생각해서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싶지 않아요. 초심을 잃지 않고 내 음악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제 음악을 들었을 때 순수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 좋겠어요. 그런 연주를 하는 것이 음악가로서 정말 큰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의 큰 꿈이에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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