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의 귀환
꽁꽁 걸어 닫았던 문호를 열자 돌아온 파도는 차분했지만, 힘이 있었다. ‘완전체’로 돌아온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를 찾은 본토의 컬렉터들이 지갑을 거침없이 열기 시작했다.
아트바젤 홍콩이 3월 21일 오후 12시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25일까지 5일간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2020년 국가 보안법 시행 후 정치적 소요와 코로나19 격리가 이어지면서 축소됐던 행사가 1월 23일 방역 규제가 완전히 풀리면서 2019년 이후 4년 만에 대규모로 열린 것이다.
3월의 홍콩의 날씨는 1년 중 가장 온화하고 여행하기에도 좋은 시기임은 틀림없었다. 25~30도 안팎의 평균기온에 5일 내내 비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미술관과 아트페어를 무기로 삼아 홍콩을 다시 ‘관광허브’로 만들겠다는 홍콩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절반의 성공’에만 그친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는 활기가 넘쳤지만 서구권의 참여가 확연히 줄었고, 검열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21일 개막행사에서 노아 호로비츠 아트바젤 대표는 “글로벌 3대 경매사의 홍콩 투자가 늘고 팬데믹 기간에도 세계적 화랑이 대규모로 진출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미술시장의 20%를 차지하는 거대시장이다. 홍콩은 의심할 여지없는 아시아의 미술중심지”라고 말했다. 아트바젤 홍콩 디렉터 앙젤 시앙-리는 외신들이 제기하는 중국의 검열 우려에 대해 “어떤 간섭, 검열도 없었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준비가 이뤄졌다”라고 설명했다.
VIP가 초대된 첫 날 풍경은 하루에만 7만 명이 찾으며 ‘인산인해’를 이뤘던 작년 9월 프리즈 서울과는 대조적이었다. 큰 손들이 집결했지만 관람객수는 4년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차분한 분위기였다.
5일간의 축제를 끝마친 아트바젤 홍콩은 5일간 8만6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9년에 집계된 8만8000명에 비해 관람객 숫자는 소폭 줄어든 것이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중국 본토의 손님이 40%, 한국과 아시아의 손님이 절반을 채운 것 같고, 서구의 손님은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원앤제이 박원재 대표는 “대부분의 작품을 중국에서 온 새로운 고객이 사갔다. 홍콩을 찾을 때는 이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톱화랑인 하우저앤워스는 조지 콘도의 ‘Purple Compression’을 475만달러(62억원), 마크 브래드포드의 ‘A Straight Line’을 350만달러(45억원), 로니 혼의 조각 ‘무제’를 175만달러(23억원)에 파는 등 대작들을 대거 판매했다. “홍콩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코로나19 제한 완화와 함께 충만한 에너지를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었다”고 마크 페이요 하우저앤워스 사장은 말했다.
최고의 세일즈를 기록한 화랑 중 하나는 뉴욕 런던 홍콩 등에 진출한 LGDR이었다. ‘NFT의 제왕’ 비플의 NFT 영상 설치작품인 ‘S.2122’가 900만달러(117억원)의 가격에 발표된 판매 데이터 중에서 최고가에 팔렸다. 레베카 웨이 LGDR 공동 창립자 겸 회장은 “박람회장과 도시 전역에서 국가와 세대를 초월한 참여와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우리는 현재 중국 난징의 데지 미술관의 영구 컬렉션에 비플의 ‘S.2122’를 판매했다”라고 밝혔다. 이 갤러리는 파블로 피카소의 ‘Fillette au bére’는 550만달러(71억원), 니콜라스 파티의 ‘Birds Fighting for Worms’는 280만달러(36억원)에 판매했다.
화이트큐브는 안젤름 키퍼의 ‘Rapunzel’을 100만유로(14억원)에 팔았다. 글래드스톤은 알렉스 카츠의 회화 2점을 각각 130만달러(17억원), 120만달러(15억6000만원)에 판매했다. 노바 장의 작품 등을 출품한 런던의 유니온퍼시픽의 그레이스 스코필드 이사는 “전 작품을 첫날 완판했다. 홍콩과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에서 온 새로운 고객과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글래드스톤의 아니카 리의 신작도 인기 작품이 됐다. 데이비드 즈위터는 엘리자베스 페이튼을 약 29억원에 팔았다. 페로탕의 간판 작가는 엠마 웹스터였고, 페레스프로젝트는 도나 후앙카를 앞세웠다. LA 갤러리 스티븐 프리드먼은 사라불의 작업 7점을 나란히 걸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메가 화랑에선 한국 작가를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싸이 톰블리, 쩡판즈, 자데 파도주티미 등 슈퍼스타가 즐비한 가고시안의 입구를 장식한 ‘얼굴’은 백남준의 ‘스탠딩 붓다’였다.
페이스갤러리는 13억원에 이우환의 ‘대화’를 첫날 팔았고, 화이트큐브와 페로탕, 갤러리도쿄는 박서보를 돋보이게 걸었다. 페이스는 전속 화랑인 PKM과 협업으로 ‘한국 추상 미술의 대부’ 유영국을 간판 작가로 걸었다. 리만머핀도 1세대 행위예술가 성능경과 전속 계약 후 첫 전시로 부스를 꾸렸다.
한국의 국제갤러리도 한국 작가의 판매가 특별히 좋았다고 밝혔다. 하종현의 대표작 ‘Conjunction 22-38’은 7억원대, 이승조의 ‘Nucleus’를 4억원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거뒀다. 2억원대 박서보 ‘묘법’과 하종현의 ‘접합’, 1억원대인 최욱경, 양혜규, 문성식 등을 첫날 팔았다. 조현화랑도 이배를 중심으로 부스를 꾸려 7점을 개막 전에 모두 팔았다. 최재규 대표는 “이배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기라 다음 아트페어에서라도 사고 싶다는 손님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학고재는 아시아권 인기가 뜨거운 정영주의 회화 4점을 개막 전 완판시켰다. 학고재 우찬규 회장은 “정영주는 미국 중국 홍콩에서 구매를 했고, 홍콩에선 마지막날 판매가 많은 편인데 기대보다 고르게 첫날부터 절반 이상을 팔았다”고 했다.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디스커버리스’ 섹션에도 휘슬은 한람, 제이슨함은 모카리, 갤러리2는 전현선의 개인전을 꾸려 개성있는 전시를 선보였다. 갤러리2는 전현선 작가의 16점 연작을 ‘그림 동굴’처럼 설치해 호기심을 자아냈다. 정재호 대표는 “관람객이 이 그림이 만든 공간 안에 들어오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16점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연작이라 한 컬렉터에게 팔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4만달러 안팎의 초대형 회화 3점을 완판한 제이슨함의 함윤철 대표는 “인물화 전통에 기반한 고전적인 페인팅하는 작가의 강렬한 이미지에 홍콩, 브뤠셀 등 해외 고객이 구입했다. 한국서 나고 자란 작가가 세계적 작가가 될 기반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M+미술관에는 5월 14일까지 열리는 구사마 야요이 회고전이 뜨거운 인기를 자랑했다. 아트바젤 홍콩에서 수십억원대 ‘호박’이 대거 팔린 것도 전시의 영향일 것이다. M+ 뮤지엄 외벽에 홍콩 풍경의 변화를 담은 피필로티 리스트의 초대형영상 ‘너의 믿음을 건네줘’를 상영하며 낮과 밤을 미술로 물들였다.
JC현대미술관에서는 LGBTQ+ 성소수자를 주제로 한 전시 ‘신화 창조자들(Myth Makers): 분광합성 Ⅲ’이 열렸다. 홍콩의 억만장자 컬렉터 에이드리언 청 뉴월드개발 부회장의 상업 몰인 K11 뮤제아 6층 쿤스트할레에서도 전 LA 현대미술관(MOCA) 관장 제프리 다이치가 기획한 전시 ‘City As Studio’도 열렸다.
홍콩 센트럴 지역 H퀸스 빌딩에 밀집한 세계적 화랑들도 일제히 같은 기간 새로운 전시를 선보였다. 악셀 베르보르트에서는 반가운 ‘보따리 작가’ 김수자의 전시도 열려 K아트의 위용을 자랑했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세계 3대 경매사도 걸작들을 공수해 전시를 열고 구사마 야요이, 나라 요시토모 등이 대거 신기록을 세우며 4월 첫 주까지 이어진 경매에서 성공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귀환했다.
김슬기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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